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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terview] “이명박 대통령 참 답답할 겁니다”

중앙일보

입력

이코노미스트

이양섭 명신산업·MS오토텍 회장은 현대그룹 최고위 임원 출신으로 이명박 대통령과 현대건설 시절부터 동고동락했다. 이 회장은 지난 대선 때 물밑에서 고려대 후배이자 오랫동안 현대에서 한솥밥을 먹은 이명박 후보를 도왔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의 내면을 누구보다 잘 아는 인물로 꼽힌다. 이 대통령의 CEO 시절과 지금의 생각, 정주영가(家)와의 관계 등을 알아보기 위해 이 회장을 3월 18일 서울 신사동 집무실에서 만났다.


이양섭 회장은 이 대통령과 고려대 상학과 선후배다. 1963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현대자동차가 설립되면서 정주영 회장의 특명으로 관리부장 겸 부공장장으로 옮겨 현대자동차 사장과 현대증권 회장을 끝으로 현대를 떠났지만 그때까지 그룹 내에서 이 대통령과 함께한 건설 출신은 그가 유일했다.

그에게는 특이한 이력도 있다. 92년 대선 때 정주영 회장이 이끄는 국민당의 선거대책본부장을 역임했던 것이다.

사실 그를 주목한 것은 12월 대선을 목전에 두고 발족한 ‘서울포럼’(박규직 아주메딕스 회장, 강경호 전 서울메트로 사장 공동대표) 고문으로서 이명박 후보의 대선 지원활동을 막후에서 이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규직 회장이나 강경호 전 사장도 현대그룹에 공채로 입사해 현대엘리베이터 사장과 한라중공업 부회장을 각각 역임했다. 서울포럼은 현대 출신의 건우회·자우회·중우회 등 18개 친목회가 모인 이른바 현대 OB연합회와 함께 MB를 위한 사조직 선거운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현대자동차의 최장수 사장으로 계셨는데 수많은 자동차 부품 중 차체를 고집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왜 돈이 안 되는 부품을 맡았느냐 이거지? 허허허. 내가 왕 회장님(정주영 회장)한테 똑바른 말을 하는 성질은 있어도 배짱은 없어, 허허허. 그래서 회사 그만둘 때 흔히 말하는 좋은 조건으로 수익이 많은 부품을 할 수도 있었고, 왕 회장님이나 정 회장님(정세영)도 그렇게 하라고 했지만 내 양심을 배신할 수 있는 배짱이 없어서 ‘내가 좋은 거 다 하면 다른 사람이 못할 거 아니냐’고 그랬지. 그러다 보니 설비만 있으면 할 수 있는 게 뭔가 하고 생각하다가 차체를 한 거예요, 허허허.”

이 회장은 과장하거나 꾸밀 줄 모르는 현대의 ‘표준 학생’으로 유명했던 인물이다. 정주영 회장이 형제들 사이에서 있을 수 있는 곤란한 문제가 생기면 이 회장을 중간에 넣어 소화를 시키기도 했고, 때로는 아우들에게 화풀이를 하고 싶으면 이 회장에게 퍼부어 샌드백이 될 때도 여러 번이었다. 그랬을 정도니까 마음만 먹었으면 노른자위 부품회사를 얼마든지 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명신산업과 MS오토텍은 국내 최대의 차체(차량 문짝과 하체 부분) 공장이면서 최고의 경쟁력을 보이고 있었지만 760여 명의 직원에 연 매출은 4000억원을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유사한 규모의 1차 협력업체들이 연 1조2000억원대를 올리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원청사인 현대와 기아자동차에서 ‘표준 학생’을 넉넉하게 대접하지 않는 모양이었다.

-말씀 중에 아우들 문제로 샌드백이 될 때도 있었다고 하셨는데, 그중에서도 제일 기억에 남는 일이 뭐였습니까?
“이건 누구한테도 공개하지 않았던 건데, 아웅산 사건 알잖아요. 그게 83년 10월 9일이야. 근데 떠나기 바로 전날이지, 새벽 5시에 왕 회장님이 집으로 전화를 했어요. 대통령을 수행해서 버마로 떠나시기 직전이야. 그러니까 10월 8일이에요. ‘빨리 와!’ 무작정 그러시니까 그 시간에 운전수를 부를 수도 없고 내가 직접 차를 몰고 청운동으로 갔어요. 들어가자마자 거울 앞에서 넥타이를 매고 계시더니 ‘명박이하고 춘림이는 내 말 잘 듣는데 넌 왜 그래!’ 다짜고짜 버럭 화를 내시는 거라. 나는 그 말씀이 무슨 뜻인가 알지요. 왕 회장님이 한라 정인영 회장님하고 분가하기 전에 동생(정인영)한테 퍼부어 댈 일이 있었는데 그걸 이명박 사장하고 이춘림 사장이 중간에서 왕 회장 뜻대로 눈치껏 잘 처리했다 그거야. 그런데 너는 뭐 하고 있느냐 그거지. 새벽에 불려가서 혼났는데, 사실 나는 왕 회장님이 누구한테 뭘 지시했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거든? 뭔가 있긴 있었던 모양인데.”

-이 대통령은 현대 재직 중 왕 회장님 마음에 꼭 들게 눈치껏 잘 처리했군요.
“(이 대통령이) 정확한 양반이지. 상당히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본인 생각하고 맞지 않으면 시간을 두고서라도 관철시키는 고집과 저력도 있고.”

▶대선이 끝난 직후 안가에서 만난 이명박 대통령과 이양섭 회장. 뒤로 김윤옥 여사도 보인다.

-회장님과 이 대통령 인연은 어떻게 됩니까?
“뭐, 알다시피 고려대 선후배 관계고, 내가 63년에 현대에 입사해 과장으로 있을 때 이 대통령이 입사(65년)를 했지요. 아까 얘기한 박규직 회장이 이 대통령보다 2년 뒤에 입사했고. 나는 현대건설에서 공채 동기들보다 진급이 굉장히 빨랐어요. 63년에 입사해 65년에 이미 과장을 하고 있었으니까. 왕 회장님이 한국비료 같은 엄청난 공사 현장에 내려 보낼 때마다 진급을 시켰어. 65년에 과장, 66년에 차장, 68년에 부장 됐으니까. 근데 현대건설에서는 나보다 더 빨리 진급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데 건설에서 내가 자동차로 옮기고 나니까 어? 이명박 대통령이 나중에 보니 나보다 더 빠르게 막 뛰어오르더구먼, 허허허. 이 대통령하고는 참으로 묘한 인연이, 내가 29년 동안 근무를 하고 92년에 현대증권 회장을 끝으로 떠났거든? 이 대통령도 같은 해 건설 회장을 끝으로 떠났잖아요. 그러니 현대 밥을 그렇게나 오래 같이 먹고 있다가 같이 떠났다는 건 평범한 인연이 아니지 않아요? ”

“정치는 피도 눈물도 없다는 생각”

-그렇다면 이 대통령이 왜 현대를 떠나게 됐고, 이른바 현대 출신들이 대거 참여한 국민당이 창당되는데도 당시 이명박 회장께서 다른 당을 택한 이유에 대해서도 알고 계시겠습니다.
“허헛, 가까울수록 해야 될 얘기가 있고 보듬어주고 감싸줘야 할 얘기가 있고 그렇지 않아요? 내가 고려대 교우회 일(전체 교우회 부회장과 경영대학 교우회 회장을 오래 했다)을 보면서 많은 교우가 그게 궁금하다고 여러 번 얘기했는데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어. 앞으로도 얘기를 하지 않을 거요. 그건 이 대통령께서 직접 언급하면 모를까, 대통령께서도 그냥 허헝 웃고 마실 거야.”

-왕 회장께서 대선에 출마했을 때 회장님이 선거대책본부장을 맡죠? 그때 이명박 회장이 국민당에 없다는 것을 상당히 허전하게 생각했을 것 같은데….
“나는 대선 때가 아니고 3·24 총선 때 국민당 선거대책본부장을 했지. 국회의원 선거만 해 주고 일절 정치에 관여하지 않았어. 어쨌든 총선 때 보니까 노태우 정부에서 압력은 엄청 들어오더구먼. 당시 재무장관이 현대의 모든 금융거래를 끊겠다고 압박하고 청와대 수석은 나를 프라자 호텔로 나오라 하더니 선거본부장 그만두지 않으면 구속시키겠다고 협박도 하고. 평소에 다 선후배 관계고 친하게 지내고 골프도 함께 했던 사이였는데 그놈의 정치가 뭔지 붙으니까 정말 피도 눈물도 없다는 생각이 들고, 정치는 한시적이지만 인간사는 영원한 건데 왜 이렇게 보잘것없이 생각하나 싶어 허탈한 기분이 말할 수 없었어, 허허허.”

이양섭 회장은 우리나라 자동차산업의 1.5세대에 속하는 인물이다. 고희를 넘긴 그의 한마디가 어쩌면 오늘날 한국경제가 처해 있는 어려운 상황의 돌파구를 열어주는 신선한 메시지가 될지 모른다.

“대통령께서 실용을 자꾸 얘기하지요? 답답하다는 말씀이거든? 정책 입안자들이 현장을 모른다는 얘기예요. 미국도 일본도 이미 20년 전부터 교과서를 던지고 있어요. EU 국가 중에는 교과서가 아예 없는 나라도 있어요. 산업은 교과서가 아니다 그거야. 창의력에 힘을 보태주고 끊임없이 새로운 아이템을 창조해 내야 경제의 생명력이 있고, 그게 미래의 현실이 되는 거요. 뭘 어떻게 해야 되고 무엇을 직시해야 하는지 정책 입안자들이 분명히 알아야 한다는 겁니다.”

이호 객원기자·작가 leeho523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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