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은 한국어로 반기문 유엔총장은 영어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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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 만나는 이명박(얼굴·左) 대통령과 반기문(右) 유엔 사무총장이 통역을 쓰게 됐다.

두 사람 모두 한국인인데도 이 대통령은 한국어, 반 총장은 유엔 규정상 영어로 말해야 할 처지이기 때문이다.

유엔 관계자는 28일 “다음달 16일 예정된 회동에는 청와대 소속 영어 통역이 배석하며, 필요하면 유엔에서도 통역을 나눠 맡을 한국인 직원이 보강될 수 있다”고 밝혔다.

유엔 규정상 유엔의 수장인 반 총장이 주요 공식 석상에서 하는 발언과 논의 내용은 모두 영어로 기록해 공개하는 게 원칙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유엔의 간부들도 회동에 참석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그래서 반 총장이 한국인이지만 이 대통령을 만나더라도 반드시 영어로 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 총장은 지난 19일 이임 인사를 하기 위해 사무실로 찾아온 박길연 유엔 주재 북한 대표부 대사와 만났을 때도 영어로 이야기했다.

반면 주요한 공식 석상에 참석하는 국가원수는 영어 등 외국어를 웬만큼 구사할 수 있더라도 모국어를 쓰는 게 국제적 관례다. 민감한 사안을 외국어로 논의하다 자칫 실수와 오해 등이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이런 관례에 따라 이 대통령은 통역을 통해 반 총장과 대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묘한 상황으로 두 사람이 만나는 형식에도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당초 이 대통령은 반 총장 관저에서 함께 조찬할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한국인들끼리 통역을 통해 이야기하면서 아침 식사를 하는 모양새가 부자연스럽다는 지적이 많이 나왔다.

그래서 이 대통령이 뉴욕 유엔본부의 반 총장 사무실을 방문하는 쪽으로 변경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해프닝은 지난해에도 일어날 뻔했다. 지난해 9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의 유엔 방문이 계획돼 있었다. 그러나 그의 방문이 막판에 취소되면서 통역을 배석시킨 한국인 간 회동은 불발로 끝났다.

이 대통령과 반 총장은 세계적 화두로 떠오른 기후변화 및 한국의 평화유지군(PKO) 파병 문제 등을 논의한다. 이 대통령은 이어 뉴욕 증권거래소를 방문하고 경제계 주요 인사 초청 오찬 간담회와 한국 투자설명회 등을 잇따라 개최해 투자 유치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뉴욕=남정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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