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학교서 기미가요 부르게 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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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일본 정부가 학생들에게 애국심 교육을 강화한다. 일본 문부과학성이 28일 고시한 초·중 대상 개정 학습지도요령은 총칙에서 “우리나라와 향토를 사랑한다”는 표현을 담았다. 또 초등학교 음악시간의 지도요령에선 ‘(일본 국가인) 기미가요를 지도한다’는 부분이 ‘기미가요를 부르도록 지도한다’로 개정됐다.

그동안 애국심 관련 내용은 도덕 과목에서 ‘나라를 사랑한다’, 사회 과목에서 ‘나라를 사랑하는 심정’이라는 식으로 포함돼 있었으나 학습지도요령 총칙에 표기되기는 처음이다. 새 학습지도요령은 초등학교에선 2011년, 중학교에선 2012년부터 적용된다.

애국심 교육을 강화하는 새 학습지도요령의 법적 근거는 2006년 개정된 교육기본법이다. 1947년부터 시행된 옛 교육기본법은 일제 시대의 군국주의 교육에 대한 반성으로 국가·군국주의를 부정하고 ‘개인의 존엄’을 강조해왔다. 우파 세력들은 “전후 교육의 여러 폐해는 현행 교육기본법이 애국심을 무시한 채 개인의 권리 존중에 너무 치우쳐 있기 때문”이라며 애국심 교육을 강화하자고 요구했지만, 일본 사회는 거부해왔다.

그러다 90년대 초반 거품 경제 붕괴 이후 오랜 경기 침체 속에 일본 사회에 우경화 움직임이 일면서 달라지기 시작했다. 2000년 일본 정부 교육개혁 국민회의에 이어 2003년 중앙교육심의회가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다 우파 정치인인 아베 신조(安倍晋三)가 2006년 교육기본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걸고 총리로 취임한 뒤 59년 만에 개정했다. 이번 학습지도요령 개정은 후속 조치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선 많은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 대표적인 우익 인사인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 도쿄도지사가 몇 년 전부터 입학·졸업식 때 국기를 걸고, 교사와 학생들이 일어서서 기미가요를 부르도록 요구하자 많은 교사와 시민단체가 “과거 국군국의로 회귀하는 것”이라며 반대해 왔다. 지난해는 일어서서 기미가요를 부르지 않은 교사들이 징계를 받기도 했다. 이번에 개정된 학습지도요령에 ‘기미가요를 부르도록 지도한다’는 내용이 담긴 것은 교사들에게 애국심 교육을 하라고 압박하려는 정부 의지로 풀이되고 있다. 아사히 신문은 28일 “자민당 내 보수파들이 이 내용을 담도록 압력을 넣었다”고 밝혔다.

이 신문은 또 “교육기본법 개정 때 중앙교육심의회의가 3년간 의견을 수렴한 것에 비춰보면 이번 개정에는 졸속으로 이뤄진 의혹이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달 공개된 개정안이 한 달 만에 애국심 교육을 강화하는 쪽으로 갑자기 개정돼 고시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도카이 기사부로(渡海紀三郞) 문부과학상은 “교사들이 의식을 갖고 아이들을 지도해 달라는 것이지 (새 지침이) 성적에 반영되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했다.

한편 여야 의원들로 구성된 ‘일본회의 국제의원 간담회’ 소속 의원들이 이번 개정안에 독도 영유권 문제를 중학교 사회 과목에 넣어줄 것을 요구했으나 문부과학성이 ‘정치적 판단’으로 거부했다고 아사히 신문이 전했다.

도쿄=박소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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