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보수에 지친 미국, 진보가 대안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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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미국, 변화인가 몰락인가
탐 엥겔하트 지음,
강우성·정소영 옮김
창비,
364쪽, 1만7000원

살아있는 미국역사
하워드 진·레베카 스테포프 지음,
김영진 옮김,
추수밭,
336쪽, 1만3000원

‘더 네이션’(The Nation). 1865년 생긴, 미국에서 가장 오래 된 잡지다.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진보적인 소수의 입장에서 편집되며, 부수는 3만부 미만”이라 나온다. 하지만 뒷부분은 틀렸다. 최근 6년간 이 주간지의 발행부수는 70% 증가, 20만부를 넘어섰다. ‘보수에게 기회’라던 2001년 9·11사태 이후 더 늘었다. 잡지의 편집인 카트리나 밴든 회블은 말한다. “미국은 생각보다 진보적인 나라다. (부수 증가는) 지금이 정치적·문화적으로 끔찍한 시대임도 보여준다.”

‘끔찍한 시대’라는 말이 과장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는 분명하다. 9만 명이 숨지고 3조 달러가 날아갔지만 여전히 해결책이 요원한 이라크전, 세계경제를 흔드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까지 미국은 편치 않다. 하지만 ‘생각보다 진보적인 나라’라는 말에 갸우뚱하는 이들도 있을 법하다. 보수 기독교 근본주의, 네오콘의 제국 이미지가 워낙 강렬한 탓이다.

『미국, 변화인가…』는 바로 이 ‘또 다른 미국’에 주목했다. 미국에서 대안 언론 블로그를 운영하는 저자가 2005년부터 2년간 10여명의 ‘비판적 지성’을 만나며 미국의 속내를 보여준다. ‘제국’이 몰락하면서 이런 또 다른 목소리는 더욱 힘을 얻고 있단다.

일례로 앤 라이트는 군대부터 국무부까지 35년을 정부에서 일해왔다. 그러나 ‘이라크전은 부당한 전쟁’이라며 외교관 자리를 박차고 나와 “반전운동이야말로 미국에 대한 진정한 봉사”라 말한다. 미시건대 역사학 교수 후안 콜은 “미국의 대중매체와 중요 텔레비전 뉴스는 대략 다섯 기업이 좌우하고 있다”고 간파했다. 찰머스 존슨(캘리포니아 버클리대 일본정책연구소장)은 전쟁이 끝났는데도 전세계에 700여 군사기지를 운영하는 미국을 ‘군사기지로 이루어진 제국’이라 규정한다.

울림이 큰 구절도 있다. “폭로에 익숙해지면서 대중은 스스로 부패하기 시작한다.”(마크 대너·고문 연구자), “혼돈이 항상 나쁜 건 아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는 사람들이 침묵을 강요당하는 것이다.”(마이크 데이비스·캘리포니아대 교수)

미국은 편치 않다. 이라크 전쟁은 여전히 해결책이 요원하고 서브 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세계 경제가 흔들렸다. 그러나 미국 사회를 지탱하는 것은 보수 진영만이 아니다. 미국을 비판하는 진보적인 지성인들도 미국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다각적 진단도 좋지만 미국이라는 전체 그림을 보고 싶다면 또 다른 시선으로 미국 역사를 훑는 『살아 있는…』을 보면 된다. 100만부 넘게 팔려나간 『미국민중사』(1980년 출간)를 쉽게 쓴 책으로, 2006년 말까지의 역사를 보강했다. 컬럼비아대 역사학 명예교수인 저자는 노암 촘스키와 함께 미국의 양심을 대표하는 실천적 지식인으로 꼽힌다

책은 “아라와크족은 마을에서 나와 해변으로 향했다”고 시작한다. 콜럼버스가 아닌 원주민의 시각이다. 이처럼 책은 일관되게 자신의 힘으로 끊임없이 저항해온 민중을 중시한다. 미국의 세기는 갔다는 막연한 전망이나 첫 여성, 혹은 흑인 대통령의 탄생 예고, 민주당과 공화당의 분리(blue-red divide: 민주당 지지가 우세한 주가 빨간 주, 공화당 우세주가 파란 주)보다 더 복잡한 미국을 보고 싶던 이들에게 권한다. 미국의 파산,·군대의 반란, 의회 활성화를 통한 권력분립 재건 등 이들이 제시하는 대안은 고민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는 그저 실용적이기만 해서는 안되고 원칙들을 지켜야겠어. 특히 두려워해서는 안돼”라는 비판적 지성의 목소리는 새겨들을 만하다.  

백일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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