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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꿈나무] 알파걸보다 못한 우리아들 '조기교육'이 원인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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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알파걸들에게 주눅 든 내 아들을 지켜라
레너드 삭스 지음,
김보영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292쪽, 1만1000원

“내가 진료한 아이들의 가정들을 보면 대부분 딸은 똑똑하고 자기의지가 분명한 데 반해, 아들은 태만하고 무기력한 경우가 많았다. 이런 추세는 인종과 계급, 장소와 빈부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일반적인 현상이다.”

미국의 가정의학과 의사이자 심리학자인 저자는 이렇게 도발적인 증언으로 서문을 채웠다. 17년 동안 워싱턴 근교에 살면서 7000여 명의 환자를 진료한 뒤 얻은 결론이란다.

학교 생활과 미래에 흥미를 보이지 않는 남자 아이들. 결말은 뻔하다. 대학에 갈 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고, 설사 간다 하더라도 빈둥거리며 농땡이를 부린다. 졸업을 하고서도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지 않고 PC방·편의점·커피숍 등에서 파트타임 일을 하며 용돈벌이 정도만 한다. 결국 부모나 친척, 혹은 여자친구에게 금전적인 도움을 받으며 살게 된다는데. 그러면서도 자신의 처지에 대해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단다. 아들 둔 부모에게 이만한 악담이 없다.

책의 초점은 ‘왜’다. 딸들은 ‘알파걸’이 돼 훨훨 날고 있는 시대에 왜 아들들은 천덕꾸러기가 돼 버렸는가를 꼼꼼하게 분석했다.

저자는 조기교육과 비디오게임, ADHD 약, 환경호르몬, 그리고 무기력한 아버지상 등을 그 원인으로 꼽는다. 미국의 현실이지만 우리 환경과도 꼭 닮은꼴이다.

조기교육이 남자 아이들에게 더 큰 폐해를 끼치는 것은 남녀의 뇌 발달과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학습과 관련된 두정엽의 경우 여자아이의 발달 속도가 남자 아이보다 2년 정도 앞선다. 그러니 다섯 살 난 남자아이에게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는 것은 세 살 난 여자아이에게 읽기와 쓰기를 가르치는 것 만큼 부절절한 행동이다. 미처 공부할 준비가 안 된 아들에게 쏟아진 과도한 부담은 결국 학습의욕 저하로 이어지고 만다.

게임중독도 남자 아이들이 더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남자 아이들에게는 자신이 환경을 지배하고 통제하고 싶은 ‘권력의지’가 강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게임 자체를 좌지우지 하면서 권력의지를 충족시키고, 스스로 강하다는 만족감을 느낀다. 현실에서 만족되지 않는 성취욕을 게임을 통해 대리 만족하는 것이다.

저자는 지난 30년간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치료약을 먹는 남자 아이들이 무려 30배나 증가했다는 것도 ‘아들 위기 현상’의 원인으로 짚었다. ADHD 치료약 자체가 뇌의 측위신경핵에 손상을 줘 의욕을 상실시킬 수 있다는 주장이다. 또 환경호르몬도 남녀아이들의 격차를 더 벌리는 요인으로 꼽았다. 환경호르몬이 남자 아이들의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낮춰 무기력하고 비만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아들들이 남자로서 역할 모델을 찾지 못하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현실에서는 물론 TV나 영화 속 아버지의 위상도 상당히 실추됐다는 진단이다. 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TV 시트콤 ‘코스비 가족’의 아버지는 자상하고 능력 있는 아버지였지만, 그 뒤 방영된 애니메이션 ‘심슨네 가족들’에서는 아버지 호머 심슨이 항상 멍청이·얼간이로 등장했다. 저자는 “이런 변화가 남자 아이들의 마음에 성숙한 남성의 이미지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말한다.

원인을 알게 됐으니 해법도 명쾌하다. ▶아들을 너무 일찍 책상에 묶어놓으려 하지 말고(심지어 1년 늦게 입학시키라고도 권한다) ▶극기훈련과 축구 등 몸을 격하게 움직이는 운동을 시켜 게임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하고 ▶섣불리 ADHD 치료를 받지 말라는 것이다. 또 ▶플라스틱 용기 사용을 줄이고 ▶생산적이고 건강한 남성에 대한 다양한 역할 모델이 되는 어른들과의 접촉을 늘리라고 권한다.

이 책은 아들 키우는 부모들에게 두 가지 면에서 유용하다. 첫째, 아들 양육법에 대한 구체적 조언을 얻을 수 있다. 둘째, 다양한 유형의 문제아를 접하면서 “내 아들만의 문제는 아니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부모의 조급증 없애기’가 아들의 기를 세우는 전제가 된다고 볼 때, 책의 두 번째 효용도 상당히 쓸 만하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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