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자동차협상 타결내용을 보면-합의 불구 해석 제각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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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美日 자동차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
보복관세 발동으로 야기될 양국간 심각한 무역전쟁을 일단 모면하게 된 셈이다.
그러나 「협상타결」에도 불구하고 양국 반응은 너무도 다르다.
미국은 대통령을 비롯해 『드디어 일본의 버릇을 고쳤다』는 식의 대만족을 표시하고 있는가하면 일본은 『천만의 말씀』이라는 전혀 다른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협상 타결 발표이후에도 워싱턴의 일본대사관 관계자는 『불합의를 합의한 것 이외에는 사실상 합의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것일까.
협상의 난항은 양국이 합의한 공동발표문의 내용에 그대로 나타난다.우선협상타결 문서의 제목부터가 합의문(agreement)이 아니라 공동발표문(Joint Announcement)으로 되어 있다.
발표문 내용의 표현 방법도 이례적이다.
합의한 내용을 부각시키는 대신 양쪽 입장을 대립시켜 놓는 방식을 택했다.이를테면 「일본기업들의 개별계획을 바탕으로 언제까지 얼마만큼의 외제부품을 수입키로 했다」는 미키 캔터 무역대표부(UST R)대표의 발언 다음에는, 「일본정부와 의견을 나눠서 하는 일은 아니다」는 하시모토 일본 통산상의 단서가 꼭 명기돼 있다.
딜러십 확대로 2000년까지 미국산 자동차의 일본시장 수출이30만대가량 더 늘어날 것이라는 미국측의 전망 수치에 대해서도하시모토는 『그러한 전망에 일본정부는 관여하지 않았다』는 토를달았다. 다시 말해 미국측은 일본으로부터 시장개방을 보장하는 구체적인 숫자를 얻어냄으로써 당초 의도했던 「수치목표정책」을 사실상 관철했다는 입장인데 반해 일본측은 「그것은 어디까지나 민간기업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점을 군데군데 문서화해 놓은셈이다.정부가 나서서 상대정부와 협상해놓고서 정부는 절대 모르는 일이라는 식이다.외교문서치고는 희한한 케이스다.
약속(commitment)이라는 표현도 일절 쓰지 않았다.미국의 요구에 일본기업들이 응하는 것에 대해 상호 인식(recognize)하고 이해(understand)한다는 표현에 그쳤다.한술 더떠 일본기업들의 구매확대계획은 약속이 아 니며 미국의통상관련법에 예속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공동발표문 말미엔 미국정부와 기업들이 만드는 기준에 따라 협상결과의 진전사항 점검을 시행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어 최소한의구속력을 부기해 놓았다.
이처럼 희한한 「합의문」에 대해 미국언론들도 일제히 의구심을표시했으나 구체적인 비판은 삼갔다.표현이야 어찌되었건 제네바협상을 통해 일본이 미국의 요구를 실질적으로 수용한 것으로 받아들인다는 분위기다.
미국이 일본으로부터 1백% 항복을 받아냈다고 큰소리치는 것이나 일본이 합의문서 곳곳에 항거의 자국을 남긴 것등 모두가 국내 정치용이라는 점에서 다를 바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결국 80년대 일본이 미국시장을 공략하면서 「기업의 자율규제」라는 방식으로 미국시장의 반발을 무마했듯 이번에는 「기업의 자율수입증대」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일본시장공격에 대처키로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뉴욕=李璋圭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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