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더불어 사는정치시대 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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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6.27선거결과로 우리는 일찍이 경험해본 일이 없는 수많은 난제(難題)와 복잡한 문제들에 불가피하게 맞닥뜨리게 됐다.중앙.지방,여.야 할 것 없이 긴장된 자세로 심각하고 진지하게 우리앞에 닥친 문제들에 도전하지 않으면 우리는 누구 도 원치 않는 혼란과 퇴행(退行)을 맛볼지도 모른다.
6.27선거는 당장 정국을 주도할 안정된 정치세력이 없는 상태로 정계판도를 흔들어 놓았다.민자당이 국회의 과반수의석을 차지하는 집권당이지만 6.27의 결과는 민자당의 참패와 야당의 대승으로 나타났다.법률적으로는 집권당이 권력을 잡 고 있지만 정치적으로는 야당이 다수세(多數勢)를 이룩하고 있다.누가 정국을 주도하느냐를 놓고 대립과 갈등이 일 것은 뻔한 일이다.
또 민자당정권에 야당시장.지사,여당지사에 야당군수,야당지사에여당군수등으로 일찍이 전례가 없었던 정당성(政黨性)의 개재로 행정체계상에 대혼란이 올 가능성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민선단체장으로서의 독립성과 지역민의를 배경으로 자치 단체들이 저마다 독자성과 정치색을 띠게 될 때 국정혼란은 심각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선거결과에 따라 지방관료.관변기관등에서 대대적인인맥재편이 전국적으로 벌어질 것도 불가피할 것이다.법으로 민선단체장의 인사권이 제한돼 있지만 지역별로 그 지역을 장악한 정치세력에 의해 인맥구조가 바뀔 것은 시간문제라고 봐야 한다.이과정에서 빚어질 행정공백(行政空白)과 과도기적 혼란 역시 우려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처럼 6.27 선거결과가 우리에게 던지는 난제는 한두가지가아니다.이런 난제들을 극복하면서 지방자치의 정착과 지방화시대의국가발전전략을 모색하는 것이 선거후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러자면 먼저,민선단체장이나 지방의원은 비록 선거전에서는 치열한 정당대결끝에 당선됐지만 이제부터 업무에 들어가면 가급적 중앙정치색은 탈피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자치단체의 행정은 법령과 조례에 따라 제도적으로 이뤄져야지 야당출신 단 체장이라고 해 하루아침에 야당행정을 시도할 수는 없다고 본다.당연히 소속당의 정강정책을 구현할 책임이 있지만,그것도 법령의 테두리안에서 점진적으로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더더구나 민선단체장이나 지방행정이 중앙정치의 하수 인이나 볼모가 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자치단체가 중앙당의 지시로 중앙정쟁(政爭)에 개입한다면 그야말로 지방자치 아닌 중앙종속이 되고 만다.
그리고 우리는 자치단체의 집단이기주의를 미리부터 경계해 두고자 한다.선거전에서 조장된 무대접.핫바지 따위의 지역감정이 국가적 우선순위나 재원염출은 아랑곳없이 자치단체의 「정책」이 돼나와 다른 자치단체나 중앙정부와 마찰을 빚을 가 능성도 없지 않을 것이다.지역별로 끼리끼리 뭉쳐 「등권(等權)」을 주장하며자기지역정책을 밀고 나간다면 나라꼴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문제와 관련해 중앙정부도 정치적으로 오해받지 않게 엄정하고 중립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할 것이다.여당출신단체장엔 후하게 지원하고,야당출신단체장은 골탕을 먹인다는 소리가 나와서는 결코 안된다.단체장의 정당소속을 떠나 업무는 업무 논리로 처리돼야 한다.
한마디로 말해 6.27선거로 구체화된 지방자치시대의 첫 장(章)은 수많은 혼란과 갈등의 요소를 안고 있다.따라서 이제부터의 문제는 이런 갈등과 혼란의 요소를 어떻게 조정.조화.통합하느냐의 문제다.다시 말해 지방자치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중앙과 지방,지방과 지방,여와 야 사이에 더불어 살고,더불어 추진하는 정신과 기술의 개발이 가장 중요할 수밖에 없다.
어느 한쪽만이 득세하고 큰 득을 보는 것은 구조적으로도 불가능하고,그런 시대도 지났다.중앙정부도 마음대로 못하고,자치단체도 멋대로 할 수 없다.정권을 쥔 여당도,대승을 거둔 야당도 일방적으로 나갈 수는 없게 돼 있다.그렇다면 더불 어 살고,더불어 추진하고,더불어 발전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선거에 패배한 집권세력은 자치는 자치일 뿐 중앙지원이 없으면아무 일도 안될 것이라는 「중앙우월론」을 펼게 아니라 선거결과를 깨끗이 인정한 바탕에서 겸허하게 새로운 정국운영방안을 모색해야 한다.선거 참패의 원인이 곧 자기들의 무능 과 과오에 있음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야당도 기고만장(氣高萬丈)하거나 집권세력에 대한 감정의 응어리를 풀려는 옹졸한 자세로는 안된다.
이제부터는 모두 이성과 합리로 조정과 조화-통합으로 가는 길에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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