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지폐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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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기록상 가장 오래된 지폐는 7~9세기 당대(唐代) 중국의 상인들이 사용한,요즘의 환어음과 비슷한 비전(飛錢)이다.우리나라의 지폐는 고려말(高麗末) 자섬저화고에서 닥나무종이로 만든 저화(楮貨)를 제조한게 처음이다.종이 자체의 전래가 늦었던 서양에서는 지폐가 15세기말에 가서야 처음 나타나지만 근대적 의미의 지폐는 서양에서 비롯됐다.지금부터 꼭 3백년전 잉글랜드은행이 발행한 6종의 파운드 지폐를 근대 은행권의 효시로 삼는다.
지폐는 소재 자체의 가치가 거의 없다.1천원권의 발행비용은 45.24원이고 1만원권은 60.34원에 불과하다.재료비만 따진다면 그보다 훨씬 적다.똑같이 만들어낼 수만 있다면 떼돈을 벌 수 있다.그래서 지폐의 발달사는 위폐(僞幣) 방지의 역사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위조방지를 위해 당대(當代)의 최첨단 기술이 총동원된다.현재의 한국은행권은 권종(券種)마다 15가지 색의 서로 다른 잉크로 여덟번 인쇄하고 총 65종류의 각종 자재가 사용된다.가장 중요한 인물초상과 윤곽,액면(額面)문자등은 요판인 쇄를 하고 용지를 만드는 단계에서부터 수십가지의 위조방지요소가 사용된다.
용지와 인쇄판.잉크가 준비된 상태에서 돈을 만드는데는 한달이나걸린다. 용지제조부터 인쇄까지를 자국에서 할 수 있는 나라는 그리 많지 않다.이런 기술이 없는 나라는 돈도 수입해 쓴다.지금은 수출국이 됐지만 우리나라도 요판시설이 도입되기 전인 70년대 이전까지는 수입에 의존했다.50년 한은(韓銀)설립 직후 발행한 지폐는 일본 대장성 인쇄국에서,53년 화폐개혁때는 미국재무부 인쇄국에서,62년 개혁때는 영국의 토머스 데라루사에서 제조.수입한 지폐를 사용했다.
위폐가 성했던 나라에서는 아예 돈에 경고문을 넣기도 한다.프랑스 은행권에는「법률에 의해 발행된 은행권을 위조하거나 변조,소지하는 자 및 동행사범은 형법 제139조에 의해 무기징역에 처한다」는 문구가 들어있고,네덜란드의 은행권에는「 형법 제208조:사용할 목적으로 주화나 은행권을 위조하거나 이를 사용한 자는 최고연수의 징역형으로 처벌됨」이란 경고 문구가 적혀 있다. 그러나 돈 찍는 공장에 돈이 새나갈 수 있는 구멍이 있다면위조방지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봐야 허사다.옥천조폐창의 지폐유출사건이 바로 그런 꼴이다.그러니 무엇보다 이 구멍부터 단단히 메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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