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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홈뉴패밀리>4.노인재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8면

올해 예순셋인 이규범(李圭範.부천시오정구작동)씨는 올 4월까지는 1남2녀의 아버지였다.그러던 그에게 지난달 6일 이후 아들 하나가 더 생겼다.
지난 87년 상처해 홀아비 신세를 면치 못했던 李씨가 역시 10여년간 혼자서 외아들을 키우며 외롭게 살아오던 박민정(朴貞.60)씨를 만나 지난달 6일 부부의 연을 맺으면서 朴씨의 아들이 새 자식이 된 것.
노부부는 자녀들의 나이순으로 위아래를 정했다.李씨의 두딸이 첫째와 둘째,큰아들이 셋째,그리고 朴씨의 아들이 막내.
내외는 결혼과 함께 둘만의 보금자리를 꾸몄지만 노부모간의 인연때문에 남매가 된 자녀들은 자주만나 「누님,형님」하며 변한 가족관계에 적응하려 노력중이다.이들은 『아직은 서먹서먹하지만 부모님을 위해서도 빨리 친남매 이상으로 우애를 다 져야겠다는 생각』이라고 입을 모은다.
홀로된 외로운 노인들끼리의 재혼이 늘면서 가족관계도 변하고 있다. 李씨 부부처럼 자식들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제2의 인생이화목한 가정이 있는가 하면 재산분배등의 문제로 오히려 새로운 가족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서울동대문구신설동에 위치한 원우노후생활연구원(원우회)은 남녀노인들의 만남을 주선하는 노인복지기관이다.
지난 85년 원앙노인상담실로 출발한 원우회는 매주 토요일 오후2시부터 6시30분까지 노인만남의 광장을 연다.참석하는 노인의 수는 1백20~1백50명선.그동안 이 모임을 통해 지난달까지 모두 1백5쌍의 늦깎이 부부가 탄생했다.
하지만『노년에 외로움을 털고 새 가정을 꾸릴 뜻을 가진 노인들은 훨씬 많지만 재산문제와 혹시 있을지 모를 자식들간의 갈등으로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는 게 원우회 정은영(鄭銀泳.58)원장의 말.
사단법인「한국노인의 전화」가 지난해 3월부터 올해 2월까지 상담사례를 분석한 결과는 鄭원장의 말을 뒷받침한다.전체 3천4백35건의 상담건수중 이성교제에 관한 상담은 3백25건(9.5%)으로 조사됐다.이는 취업(33.4%).노인복지 시설(15.
1%)에 이어 3위를 차지할 정도의 높은 수치로 노인들이 과거의 사회적 통념에서 벗어나 이성교제에 적극적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피상담자의 특성을 보면 본인이 자녀들 몰래 비밀스럽게 상담을 하는 경우가 85%로 압도적으로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아직 사회정서가 노인들의 재혼을 자연스레 받아들이지 못하는 탓도 있지만 재혼에 따른 재산분배.제사등 가족행사에서 자식들과 갈등이 빚어질 것을 꺼린 노인들의 생각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러다보니 홀로된 노인들간의 재혼은 실질적 결혼보다는 식만 올리고 혼인신고를 하지 않는 불완전한 형태가 많은 게 현실이다. 金모(73.서울서대문구북아현동).禹모(65)부부는 3년전 친구및 자식들의 축복속에 재혼했지만 혼인신고는 하지 않았다.따라서 법적으로는 부부가 아닌 셈.
이유는 작은 가내공업을 하는 金씨와 조그마한 건물 한 채를 갖고 있는 禹씨의 재산을 둘러싼 자식들간의 불화를 원치 않기 때문.3남매를 둔 金씨와 4남매의 禹씨는 가정을 꾸리면서 각자의 재산은 잡음없이 친자식들에게만 물려주기로 뜻을 모았다.물론자식들도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고.
노부부는 제사를 모실 때도 각자의 친자식들만 부른다.金씨집안제사일 때는 金씨의 3남매만 찾아오고 禹씨집 제사일 때는 禹씨의 친자식만 온다.
어떻게 보면 야속하다고 볼 수도 있지만 부담없는 가족관계라 자녀들도 전적으로 동의한다.두 노인만 부부의 인연을 맺었을 뿐당사자의 자녀들끼리는 남남인 새로운 가족관계가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 金鍾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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