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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 막는 경찰도 인권 있어 결국 제복 입은 시민 아니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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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만난 사람=김종혁 사회에디터

국가인권위원회를 찾긴 쉽다. 서울 시청 바로 옆 신세기 빌딩 7층부터 13층까지다. “시민의 목소리를 들으려면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1991년 파리 회의 때 세워진 ‘접근성의 원칙’에 따라서다. 이곳에는 한 해 평균 5000여 건의 진정서가 접수된다. 선생님한테 일기장을 보여주는 게 싫다는 초등생부터 임금을 못 받은 외국인 노동자까지 다양하다. 한때 인권위는 진보 또는 좌파만 대변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북한 인권엔 봉사라는 비아냥도 있었다. 달라진 시대정신 속에서 인권위가 무엇을 바라보는지가 궁금했다. 안경환(사진) 위원장과의 인터뷰는 19일 오후 위원장실에서 1시간30분 동안 진행됐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언제 어떻게 설립됐나.

“동구권이 붕괴하고 90년 유엔이 인권위원회 설립을 권고한 이후 권위주의 정권을 경험한 나라들에서 인권위가 생겼다. 한국은 2001년 만들어졌다. 현재 110개국에 인권위가 있다. 아태지역에선 호주와 뉴질랜드·필리핀 등 14개 국이다. 일본과 중국엔 없다.”

-보통 ‘인권’이라면 불법 체포나 고문 같은 걸 떠올리는데.

“물론 그렇지만 사회가 발전하면 그런 건 거의 사라진다. 대신 일상적인 문제가 대두된다. 삶의 질과 품격을 보장받기 위한 차별 극복의 문제다.”

-한국의 인권 상황을 어떻게 평가하나.

“괄목할 만한 발전을 했다. 국제사회는 한국을 경제성장과 정치 민주화에 따른 인권 신장을 거의 동시에 이룬 유일한 나라로 평가한다. 정치적 인권 침해, 고문, 언론 자유 등은 매우 신장됐다. 하지만 복지적 차원의 인권은 많이 뒤처져 있다.”

-요새는 주로 어떤 진정이 들어오나.

“한동안 교도소 내 문제가 많았고, 군대·경찰 쪽에서도 피해자나 그 가족들이 많이 진정했었다. 각종 정신병원과 수용소 등 복지시설과 관련한 사안도 늘고 있다. 특히 요새는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관련 민원과 진정이 급증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한국으로 시집온 외국인 처녀들이다.”

-인권위의 대표적 성과는 뭔가.

“인권이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만든 점이다. 남녀 차별, 고용 차별 등 우리 사회에는 의도적이진 않아도 숱한 차별과 인권 침해가 존재해 왔다. 중고생의 두발 검사도 그렇고 초등학생 일기장 검사도 마찬가지다.”

-그런 부분까지 국가가 개입하는 게 과연 옳은가.

“작은 문제지만 당사자 입장에서는 중요한 문제다. 크레파스 색깔 중에 살색이 있다. 그런데 2003년인가에 어린이들이 ‘살색이란 표현은 맞지 않다’고 우리에게 진정해 왔다. 지금은 모두들 살구색이라고 부른다. 어찌 보면 이런 일상생활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침해되는 인권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인권위가 너무 좌편향적이고 진보 성향이라는 비판도 많다.

“그렇게 느껴질 부분이 있다는 걸 잘 안다. 하지만 인권은 좌도, 우도 아니다. 소수자의 문제를 다루다 보니 그렇게 비칠 수 있겠지만 실제로 정치적 속성을 갖는 사안은 거의 없다. 인권에 이데올로기적 문제(편향성)가 있었다면 그건 과거의 문제다. 이젠 정치적 인권에서 일상적 인권으로 초점이 옮겨갔다.”

-일상적 인권이라는데, 그럼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해선 왜 소홀했나.

“법적으론 북한 정부에 강제할 권한이 없다. 우리 정부에 대해서만 권고할 뿐이다. 그동안 인권위는 탈북자나 납북 어부·전쟁포로 문제에 대해 권고도 했고, 또 북한 인권 실태를 자체 조사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이런 활동들을 국민에게 적극 알리지 못한 게 사실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불법 시위를 절대 용납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어떻게 생각하나.

“집회와 결사의 자유는 특별히 보호받을 기본권이다. 교통이 불편하니 시위하지 말라고 할 순 없다. 집회와 시위 자체를 막으면 안 되고, 그걸 허용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폭력 시위가 되풀이되지 않는가.

“폭력 시위는 인정될 수 없다. 반드시 평화적이어야 한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때는 ‘국가 폭력’에 맞서 싸운다고 했지만 이젠 아니다. 정상적으로 뽑힌 정부에 그러면 안 된다. 우리 인권위 건물도 여러 번 점거당했다. 그래서 그런 식으로 문제를 제기하는 건 안 된다고 해당 단체에 공문도 보냈다.”

-시위를 막는 경찰관들에게도 인권이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 나 역시 경찰병원을 찾아가 부상당한 전·의경을 위문했었다. 경찰은 인권위원장이 찾아온 게 좀 의아한 것처럼 보더라. 하지만 경찰도 결국 제복을 입은 시민이 아닌가. 그동안 전방 부대 군인한테도 갔었고 경제단체와 세미나도 했다. 뉴라이트 계열의 북한 운동하는 분들이 토론회 할 때 가서 내가 축사도 했다. 인권은 누구에게나 소중한 것 아닌가.”  

◇안경환 위원장은=부산고·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1987년부터 서울대 법대 교수를 지내다 2006년 11월 제4대 국가인권위원장(장관급)에 임명됐다. 참여연대 운영위원장과 아름다운 재단 이사를 지내는 등 활발한 시민사회 활동을 펼쳐 왔다. 서울대 법대 학장 때는 법대 최초로 여성 교수를 임명하고 1급 시각장애인의 법대 입학을 허용해 ‘여성 권익 디딤돌상’을 받기도 했다.

정리=박신홍 기자,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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