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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속의인물탐험>이해경作"길위의 집" 이길중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사랑은 물처럼 아래로 흐른다.물이 결코 위로 치흐르지 못하는것처럼 자식은 아버지의 마음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그런 갈등과 착오 속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반복되는 반목과 화해 속에서인류는 발전하고 지속돼 왔을 것이다.
『길 위의 집』의 이길중씨는 묵은 족보를 뒤적이며 좋았던 시절을 회상하는 가난한 향반의 아들이다.그는 아버지의 무력함과 비겁함에 반발해 낯선 고장에 가서 뿌리를 내린다.홀연히 날아온벽오동 씨앗이 튼실한 나무로 자라듯 그곳에서 가 정이라는 견고한 성곽을 만든다.
남의 힘을 빌리지 않고 내 힘으로 흠결없이 살아간다는 자부심을 가지고.그 아버지는 자신의 왕국을 다스리기 위한 규칙을 만들고,그 신민들의 앞날까지 계획해 둔다.
불행하게도,아니 당연히 그러하듯이 그런 아버지를 완전히 이해하고 공감하는 아들은 없다.아버지의 위력에 짓눌려 나약한 모습으로 변모하거나,아버지에 반발해 난폭하게 자신을 파괴하거나,아버지의 존재를 부정하며 집을 떠나는 아들이 있을 뿐이다.
그런 아버지도,그런 아들도 그들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정당한가.이길중씨의 계획이 자식들의 앞날과 행복하게 맞물리지 못한 것,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여전히 가부장제의 미덕을 고수하며 그 가치관에 기대어 살고 있는 아버지와,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핵가족 시대의 아들,그 세계관의 갈등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 아버지는 끝까지 아들들이 등을 비빌 수 있는 언덕으로 남는다.장남에게는 공장을,2남에게는 산 문서를,셋째 아들에게는 집을 넘겨준다.유산으로 남겨주는 게 아니라 당신이 살아 있는 동안 아들들이 저마다 자립해 견고한 세계 를 완성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그 일을 한다.
『자식이 원하는 것을 해주기 위해 처음으로 나는 부자였으면 하고 바랐다』고 말하는 『고리오 영감』의 고리오 영감이나,언젠가 돌아올 자식들을 위해 밤마다 혼자 집을 짓는 『산체스네 아이들』의 아버지 같은 인물을 우리 문학은 별로 가 지고 있지 않다.아니 우리 문학은 오히려 부권상실에 대해,아버지 없음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했다.
그런 점에서 이길중씨는 소중한 인물이다.그가 아무리 가족들 위에 군림하는 폭군이라 해도,결과적으로 자식들의 앞날을 어긋나게 했다해도 그는 다시는 만날 수 없는 한 시대의 마지막 아버지일 것이다.족보보다는 부귀빈천이라는 말을 더 신 뢰하는 근대사회에서 현대사회로 넘어가는 아버지의 모습이고,그럼에도 끝내 아들들을 성(城)에 잡아두지 못하는 가부장제에서 핵가족 시대로넘어가는 아버지의 초상이다(95년 민음사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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