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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 폭락인데, 저 펀드 왜 웃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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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원화 가치, 떨어져 줘서 고맙다.”

주요 통화에 대한 원화 값의 급락을 지켜보면서 가슴을 쓸어내리는 사람들이 있다. 환 헤지를 하지 않은 해외펀드 투자자들이다. 외국 주식에 투자할 때는 주가가 변하지 않더라도 원화 값 상승(환율 하락) 때문에 손해를 볼 수 있다. 이런 위험을 피하기 위해 선물환 거래로 환율을 거래 당시 기준으로 고정시켜 버리는 게 환 헤지다. 그러나 지금처럼 원화 값이 하염없이 떨어질 땐 얘기가 다르다. 환 헤지를 하지 않은 쪽이 훨씬 이익이다.

◇주가 떨어져도 웃는다=올 들어 세계 증시가 동반 급락했지만 환 헤지를 하지 않은 펀드의 손실 폭은 상대적으로 작았다. 주가가 크게 떨어졌는데도 외려 이익을 내는 상품까지 있다. 일본 토픽스100지수에 따라 가격이 움직이는 상장지수펀드(ETF)인 코덱스재팬(Kodex Japan)이 대표적이다. 지난달 19일 이 상품이 나온 뒤 한 달도 안 돼 토픽스100지수는 16% 넘게 떨어졌다. 그런데도 이 펀드는 17일 종가 기준으로 1.66%의 수익률을 올리고 있다. 같은 기간 엔화 대비 원화 값이 21% 이상 급락했기 때문이다. 홍콩 항셍중국기업지수(HSCEI)를 따라가는 ETF인 코덱스차이나H(Kodex China H)도 원화 가치 하락이 반갑긴 마찬가지다. 최근 한 달 새 지수가 20% 가까이 빠졌지만 환율 덕분에 이 펀드의 같은 기간 손실은 절반 수준인 11.63%에 그쳤다.

일반 해외주식형 펀드들의 최근 수익률도 환 헤지 여부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난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유럽 주식에 주로 투자하는 ‘푸르덴셜유로주식자’의 경우 환 헤지를 한 상품은 최근 한 달 동안 8% 정도 손해를 봤다. 그러나 헤지를 하지 않은 상품은 2%대의 수익을 올렸다. 남미 기업에 투자하는 ‘삼성라틴아메리카주식종류형자’는 환 헤지를 했을 경우 한 달 수익률이 4%대였지만 하지 않았을 경우엔 9% 수준으로 껑충 뛰었다.

◇환 헤지, 할까 말까=해외주식형 펀드가 환 헤지를 하는 것이 좋은지에 대해 전문가들의 견해는 갈린다. 제로인 최상길 전무는 “무조건 100% 환 헤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특정 국가 주식에 투자한다는 것은 그 나라의 경제 성장을 믿는다는 것이고, 경제가 성장하면 통화 가치도 함께 높아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란 것이다. 굿모닝신한증권 이계웅 펀드리서치팀장은 “원칙적으로 헤지를 하는 게 맞다”는 입장이다. 그는 “현재의 환율이 아니라 펀드를 환매할 때의 환율이 중요한데 이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처럼 원화 값이 떨어질 때는 헤지를 안 하는 게 이익이지만 반대 상황에 처할 위험도 얼마든지 있다는 얘기다. 현재 국내에서 파는 해외펀드는 환 헤지를 하는 상품이 압도적으로 많다. 환 헤지를 하지 않은 상품을 고를 여지는 크지 않다. 이 때문에 투자자의 선택권을 넓혀 주자면 환 헤지 여부에 따라 상품을 다양화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의 공통된 의견이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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