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노건평씨 기소, 대통령부터 반성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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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무현 대통령의 형 건평씨가 한 기업체 사장에게서 연임 청탁과 함께 3000만원을 받은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다. 당선자 시절부터 기회 있을 때마다 친인척 비리의 엄단을 강조하고, 특히 인사청탁에 대해선 패가망신시키겠다고 호언했던 盧대통령으로선 입이 열개라도 할 말이 없게 됐다.

검찰 조사 결과 건평씨는 지난해 9월 자신의 집에서 돈이 든 쇼핑백을 건네받았다가 지난해 12월 3000만원을 되돌려준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연임 청탁과 관련된 돈인지 몰랐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다면 청탁한 사장의 연임이 무산된 뒤에야 돈을 돌려준 이유가 무엇인가. 더구나 그가 돈을 받은 것은 盧대통령의 측근인 안희정씨가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는 등 측근들 비리가 문제됐을 때다. 대통령이 측근 비리로 곤경에 처했을 때 친인척은 검은돈을 챙기고 있었으니 기가 막힐 따름이다.

건평씨를 둘러싼 잡음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盧대통령 취임 직후인 지난해 2월 국세청.경찰청 인사 개입설로 구설에 올랐다. 한 시사주간지 기자와 만나 특정인을 차기 국세청장 적임자로 거명한 게 발단이었다. 그런가 하면 "돈 같은 것은 절대 받지 않지만 사연이 딱하면 도와주기도 한다""장관 시켜 달라는 사람에게서 받은 이력서가 두 통 있다"고도 했다. 오죽했으면 그에게 '봉하대군'이란 별명까지 붙였을까. 어쩌면 비리의 싹이 그때부터 자랐는지도 모른다. 그런데도 당시 청와대는 실제 청탁은 없었다며 이를 단순 해프닝으로 결론짓고 덮어버렸다.

역대 정권의 친인척 비리를 국민은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대통령 아들이나 친인척들이 이권과 관련해 돈을 챙기고 정부 인사에 개입하는 등 국정을 농단(壟斷)한 일들이 정권마다 되풀이돼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친인척 관리 시스템을 예방 위주로 바꾸고 드러난 비리에 대해선 일벌백계로 다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