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선심성 재해지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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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우 사회부 기자

중앙재해대책위원장인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은 10일 폭설 피해를 본 충청도 등을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했다. 피해가 난 지 5일 만이다. 정부가 모처럼 국민 입장을 생각해 발빠른 행정을 보여줬다. 삶의 터전을 잃고 실의에 빠져 있는 피해 주민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정부는 스스로 정한 원칙과 절차를 무시하고 이번 결정을 내렸다. 우선 특별재해지역으로 선정하기에는 피해 규모가 작다. 행자부 훈령으로 정해진 특별재해지역 기준은 여러 시.도에 걸친 재해의 경우 사유재산 피해액이 3000억원, 총 피해액은 1조5000억원을 넘어야 한다. 중앙재해대책본부가 파악한 이번 폭설의 피해액은 총 5698억원이다.

또 특별재해지역으로 선포하려면 현장 실사(實査)를 하도록 돼 있지만 하지 않았다. 재해대책본부는 정치권과 지방자치단체의 요구가 거세고, 노무현 대통령까지 특별재해지역 지정 검토를 지시하자 중간과정을 생략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혜택을 볼 주민이 몇명인지, 필요한 예산이 얼마인지에 대해서는 대답을 못하고 있다. 특별재해지역과 일반재해지역은 위로금과 복구비 지원에서 많은 차이가 난다. 피해 주민들이야 정부의 지원이 많을수록 좋지만 정부가 법령을 어기면서 결정을 내린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총선을 앞두고 선심행정을 폈다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다.

정부는 '특별재해지역 지정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지역'이라는 법령의 예외 조항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그 말은 앞으로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특별재해지역으로 지정해 달라는 요구를 뿌리치기 힘들게 됐음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김상우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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