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미군 장교가 쓴 ‘피의 겨울’의 기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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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한국 전쟁, 마지막 겨울의 기록
더들리 휴즈 지음,
임인창 옮김
한국경제신문,
278쪽, 1만3800원

펀치볼, 피의 능선, 스모크 밸리…. 한국 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이다. 22살 젊은 미군장교가 이 격전지에서 보낸 181일간의 기록을 책으로 냈다. 한국전쟁을 다룬 대부분의 책이 개전 첫해에 집중돼 있는데 비해 이 책은 그 뒤 2년간의 치열한 ‘참호 전투’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미 45사단 대공 포병대대 소위로 한국전쟁에 참여했다. 대개 전쟁의 역사는 이를 주도한 지휘자의 관점에서 기록된다. 하지만 이 책은 이제 처음 전쟁터에 투입된 초급장교의 시각에서 쓰여졌다. 훨씬 현장감이 있고,사람 냄새가 난다.

휴즈가 본 한국전쟁은 참혹했다. 밤만 되면 동부 전선은 지옥으로 변했다. 적군은 아군의 진지에 끊임 없이 포격을 가했다. 날이 밝으면 아군의 대대적인 포격이 시작됐다.

“이 곳은 소나무로 뒤덮인 산이 많은 아주 아름다운 나라다. 그러나 폭격으로 상처를 입지 않은 나무는 거의 없었다. 공산군 진영은 더 심했다. 반복된 포격으로 나무가 전혀 남지 않은 맨땅이 됐다.”

전쟁에 직접 참여하지 않은 민간인들도 매일 살아남기 위한 전투를 치뤘다. 어린 아이들은 통조림 한 개를 받기 위해 미군들의 심부름을 했다. 일부 여자들은 미군에게 몸을 팔기도 했다. 휴즈는 “집에선 당연하게 생각하고 감사해하지 않았던 것들이 이 곳에선 오히려 사치스럽게 느껴졌다”고 회고했다.

한국전쟁에 참여했을 당시 휴즈는 신혼이었다. 사선을 넘나드는 전투 중에도 그는 미국에 있는 아내에게 거의 매일 편지를 썼다. 이 책은 그 편지들을 토대로 쓰여졌다. ‘러브레터’ 같은 전쟁의 기록이라 할 수 있다. 휴즈는 아내에게 보낸 편지에서 오늘 맛있게 먹은 음식, 보급받은 물건, 재미있게 본 영화, 부대원들과 즐거웠던 일 등을 시시콜콜 적었다.당시 미군들의 일상을 자세히 엿볼 수 있다.

저자는 텍사스 A&M대에서 지질학을 전공했다. 가스·유전 탐사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다. 현재 유전·가스개발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50년 전 기아에 허덕이던 한국이 이룬 놀라운 발전이 자랑스럽다고 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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