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예쁘고 잘 생기면 용서되는 법칙은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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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아름다움의 과학
울리히 렌츠 지음,
박승재 옮김
프로네시스,
392쪽, 1만5000원

“예쁜 애들이 일하기도 편하고, 훨씬 잘해. 못생긴 애들은 성격도 꼬여있고 다루기가 힘들더라고.” 여자 후배들이 유난히 잘 따르는 남자 선배가 폭탄주 한 순배 이후 했던 고백성사다. 정치적으로는 올바르지 않을 수 있지만, 솔직히 인정하자. 예쁘고 잘생긴 게 남녀불문 고금동서 다 좋다고.

문제의 발언에 야유를 보낸 여자 후배들. 일순 침묵이 흘렀다. 사실 그 남자 선배의 180㎝ 키와 멋진 외모가 좋아 모였고, 같은 스타벅스라도 이왕이면 예쁜 (그렇다, 예쁜!) 남자 종업원이 있는 곳을 골라 가지 않던가. 하물며 수세기에 걸쳐 여성의 외모를 감상하는 지위를 누려왔던 남성들은 말할 것도 없을 것을. 집 앞 과일가게 아저씨조차 렌즈 끼고 치마입고 갔을 때는 덤으로 사과 하나라도 더 주지만 안경에 ‘추리닝’ 차림으로 가면 시큰둥하지 않던가.

실제 그 선배의 발언은 전혀 혁명적이지 않다. 의사이자 과학 저술가인 독일인 울리히 렌츠의 신간 『아름다움의 과학』에 따르면 이미 기원전 600년 그리스의 시인 사포는 “예쁘면 다 착하다”라는 발칙하지만 21세기에도 유효한 말을 남겼다. 물론 “아름다움이란 보는 사람의 눈에 있다”라는 올바른 격언도 있지만, 글쎄, 과연 그럴까?

렌츠는 “아니다”라고 잘라 말한다. 아름다움이란 절대 상대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를 과학적으로 증명해 보이겠다고 선언한다. 책의 앞머리에도 평범한 ‘서문’ 대신 기세 등등한 ‘사전경고문’을 등장시킨다.

호기심에 인터넷을 뒤져 작가의 외모도 확인해봤다. 조지 클루니만큼은 아니지만 나름 괜찮은 외모를 자랑한다. 하긴, 고도로 계산된 소위 ‘얼짱’ 각도로 찍은 사진이라 그럴지도 모르겠다. 작가의 외모를 본 후 책을 계속 읽기로 결심, ‘사전경고문’을 넘어 마라톤을 달렸다. 저자는 사회과학적·경제학적, 그리고 심리학적 방법 등 아름다움에 대한 과학적 접근을 소개한다. 아름다움의 관점은 사람마다 나름이지만 놀라울 정도의 공통점이 존재해왔고, 앞으로도 존재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바비 인형의 얼굴과 몸매를 한 살인자를 상상할 수 있을까? 아름다움을 의미하기도 하는 영어단어 ''fair''에 ''공정한, 올바른''이라는 뜻도 있다는 것을 상기해보자. 아름다움이란 권력이고 우리는 그의 노예다.

예컨대 ‘미인의 공식을 찾아라’에서는 ‘아름다움의 공식에 영원히 존재하는 상수’를 찾기 위한 과학적 실험을 소개한다. 갓난아기조차 미인을 알아본다거나 뇌가 미인을 알아보기까지는 0.15초면 충분하다는 실험결과 등, 저자가 제시하는 사례는 풍부하고 흥미롭다. 사람들은 ‘동안’을 더 아름답다고 느낀다는 실험 결과도 소개하며, 이에 비춰 왜 남성보다 여성이 더 ‘미모’에서 유리한지도 설명한다.

일반적으로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은 남자를 원시인인 네안데르탈인 형태로 바꾸고, 여성 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은 여성의 외모를 아기와 같이 바꾼다는 것이다. 이후 ‘아름다움의 권력’에서는 통시적 분석도 제공하는데, 1970년대까지도 미국의 몇몇 도시에서 경찰이 ‘볼품없는 사람’들을 거리에서 체포할 수 있도록 허용한 ‘어글리 법(Ugly Law)’의 사례도 흥을 더한다.

저자는 아쉽게도 후반으로 달려갈수록 속도감을 조금씩 상실한다. ‘억울하면 예뻐져라’라고 외쳐대다가 결국 ‘당신은 충분히 아름답다’며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급기야 ‘아름다움이라는 감옥’에 이르러서는 지극히 정치적으로 올바른 결론을 내린다. ‘아름다움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진정하게 아름다울 수 있다’고.

뭐,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왠지 허탈한 건 사실. 그래도 이 책을 외면할 수는 없다. 실제로 아름다움이란 권력이고, 우리는 그 노예니까. 아버지들이 발모제 샴푸를 쓰고, 성형외과가 그토록 성업중인 건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참고로, 위의 문제 발언의 주인공 선배는 아직도 절친하게 만난다. 왜? 잘생겼으니까!  

전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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