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계파 이해 못 벗어나는 한나라당 공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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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4년 전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에서 계파 싸움은 찾아볼 수 없었다. 천막당사에 탄핵 역풍이 몰아치던 시절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사즉생(死則生·죽기를 각오하면 산다) 정신이 충만했다. 공천심사위원장의 리더십이 존중됐고 위기감이 팽배했으며 자기 희생의 덕목이 살아있었다. 당시 최고 실세였던 최병렬 전 대표가 단칼에 날아갔던 건 이런 분위기에서였다.

배가 부르니 배고플 때를 추억하기 싫어진 것일까.

지금 한나라당 공천심사위는 리더십이 없고, 위기감이 없고, 자기 희생이 없다. 공천을 뒤에서 조종하려는 손들 때문이다. ‘결과로만 얘기하겠다’는 안강민 위원장이 안팎의 압력 때문에 회의장을 박차고 나갈 정도다. ‘나경원 전략공천 사건’만 해도 그렇다. 서울 송파병에 신청했던 나경원 당 대변인 문제를 놓고 일부 심사위원들이 안 위원장과 다툼을 벌였다. 다툼을 벌인 것까진 좋은데 그들은 자기 의견이 관철되지 않는다고 그냥 퇴장해 버렸다. 그 다음날 아예 출근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지난 한 달간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열렸던 회의가 중단돼 버렸다. 나 대변인은 결국 중구로 전략공천됐지만 공천을 흔드는 제3의 손맛 때문에 개운치 않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이러한 공천 갈등이 7월 전당대회를 겨냥한 실력자 간의 힘 겨루기 성격이 배어 있다는 것을. 당권을 탈환하려는 쪽과 당권을 유지하려는 쪽의 이해가 충돌하고 있다. 공심위원들 가운데 일부는 이들의 이익을 관철시키는 채널로 종종 활동해 왔다. 초기에는 눈치도 보고 염치도 차렸으나 이젠 노골적으로 계파 충돌을 벌인 것이다.

이런 일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박근혜 전 대표는 오늘 예정된 영남권 공천을 앞두고 “지난해 경선 때 제가 깨끗이 승복해 정치발전의 계기를 마련했는데 이번의 잘못된 공천으로 그거 다 까먹고 말았다”고 분노를 표시했다. 박 전 대표 역시 또 하나의 ‘공천을 흔드는 손’일 수 있다. 그러나 공천을 흔드는 다른 큰손들이 존재하는 것도 엄연하다. 당 안팎에선 이명박 대통령이 안강민 위원장을 청와대로 불러 공천 관련 논의를 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실력자들은 저마다 공천심사위를 향해 손을 뻗치고 있다. 한나라당 공심위는 4년 전 배고픈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기 바란다. 이렇게 계파의 이익에만 몰두한 정당을 국민은 외면한다. 박재승 위원장의 희생 공천과 손학규·정동영 당 지도부의 사즉생적 서울 출마로 감동을 이어가는 통합민주당이 두렵지 않은가. 이래서 정치는 살아 움직인다고 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