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산책] 원자재난은 예정된 악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4면

온나라 전체가 원자재 난으로 열병을 앓고 있다. 연일 신문.방송이 공사중단.부도 소식 전하기 바쁘다. 너무나 명확한 사안인데도 여전히 궁금한 게 몇가지 있다.

"과연 우리가 이렇듯 난리를 피워야 하는가"부터 궁금하다. 문제가 심각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오래전부터 예고된 것이기 때문이다.

자원소비의 신생 대국인 중국이 성장을 멈추지 않는 가운데 미국을 중심으로 선진국 경기가 되살아난다거나, 지난 2년 달러 가치가 줄곳 내려가 달러표시 원자재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얘기는 수없이 들은 바다.

지금의 원자재 난은 세계경제 흐름에 관한 우리의 무지와 무관심에 대한 값으로 봐야 한다는 얘기다.

"과연 지금의 원자재 값을 폭등한 것으로 봐야 하는가"라는 의문도 든다.

두번에 걸친 오일쇼크의 여파로 '가격의 정상(頂上)'에 이르렀던 원자재 값은 그 후 오르락내리락 하면서도 완만한 하락 추세를 보여 아직 1980년대 초의 수준을 회복하지 않았다.

80년에 340에 육박했던 17 대 국제원자재에 대한 로이터-CRB (선물)지수는 그 이후 네번에 걸쳐 200 이하로 내려갔었고, 2001년 말부터 서서히 다시 고개를 들어 지금의 270 수준에 이른 것이다. 장기적으로 보면 원자재 값이 오른 것도 아니고 급하게 오른 건 더더구나 아니란 분석이다.

"원자재 값이 다시 내려간다"는 주장도 의문이다.

그 중에는 조만간 선진국의 경기회복이나 중국의 성장세가 진정될 것이기 때문에 이 고비만 넘기면 금세 정상으로 돌아갈 것으로 보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그러나 자원다소비형 성장이 예상되는 거대 개도국들이 줄 서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중국에 더해 인도.브라질.러시아 등도 속속 경제개발의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게다가 원유.철광석 '재생불가능 자원'은 고갈이라는 정해진 길을 걷고 있다.

지금의 사태는 긴 악몽의 시작에 불과할지 모른다.

우리의 원자재 씀씀이를 보면 "과연 이 나라가 원자재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경제인가" 묻게 된다. 80년대 초의 그 극심한 원자재난을 겪고도 한국인의 원자재 씀씀이는 수그러들 줄 몰랐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의 1인당 에너지 소비량(TOE 기준)은 세배로 늘었다.

싼 원자재와 남다른 경제성장을 누리기에 바빠 날이 갈수록 원자재 난의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지도 몰랐다는 얘기다.

지금의 호들갑으로 미뤄 보건데 이 의문들이 쉽게 풀어질 것 같지 않아 걱정이다.

김정수 중앙일보경제연구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