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제 12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떨지 않는 이세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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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결승 1국 하이라이트>

○·이세돌 9단 ●·박영훈 9단

제11보(175~190)=박영훈 9단의 175, 177이 마지막 문제를 냈다. 현재의 계가는 흑이 반면 두세 집, 많아야 네 집을 이긴다고 한다. 덤이 나오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상변 상황에 따라 중앙에서 흑이 몇 집인가 낼 수 있다면 승부는 박빙으로 치닫게 된다.

‘참고도’는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그림. 상변 사활이 조금 켕겨 백1로 확실히 살아둔다면 그때 흑이 2, 4, 6을 선수하고 8로 지킨다. 중앙이 의외로 토실해지면서 승부는 미세해진다. 그러나 이세돌 9단은 떨기는커녕 178로 성큼 뛰어올라 오히려 흑의 연결고리를 위협했고 180, 182로 중앙을 깡그리 지운 다음 190마저 막아버렸다.

큰 승부에서 떨지 않는다는 것은 ‘수양’의 문제라기보다는 ‘체질’의 문제다. 20년 전, 중국의 녜웨이핑 9단은 2대2에서 맞이한 조훈현 9단과의 응씨배 결승 최종전을 앞두고 전날 밤 한숨도 자지 못해 백납 같은 얼굴을 하고 대국장에 나타났다. 그는 산소호흡까지 하며 최악의 졸작을 두었고 이 패배의 상처 때문에 현역에서 영영 멀어지고 말았다. 동갑내기인 조훈현 9단이 만 50세가 될 때까지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것과 크게 대비된다. 당시 중국 경제 현실을 고려할 때 40만 달러라는 우승상금이 어마어마한 부담감으로 작용한 것도 사실이겠지만 결국 녜웨이핑의 승부 체질이 약했다고 풀이할 수밖에 없다.

이 판은 이세돌의 생동하는 기세가 샘물처럼 끝없이 이어지며 4집반 완승을 거뒀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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