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눈>개방화와 公倫의 잣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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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영화『로키Ⅳ』『神의 아그네스』『백 투더 퓨처』….지금은 이미고전처럼 기억되는 작품들이다.그러나 이같은 영화들도 이런저런 이유로 수입마저 금지된 시절이 있었다.
강압과 규제의 80년대,영화 수입을 허가하고 내용을 심의하는공연윤리위원회는 서슬이 시퍼런「검열기관」이었다.
당시 공륜은『로키Ⅳ』는「88올림픽을 개최할 나라에서 美蘇간 폭력적 권투대결은 곤란」,『神의 아그네스』는 「종교적 모독 가능성」,『백 투더 퓨처』는「공상세계에서 모자(母子)를 이성관계로 묘사」등의 이유를 내세워 수입을 불허했다.수입 금지 이유라는게 지금 생각하면 그저 어처구니없는 웃음만 자아낼 뿐이다.
영화수입 과정부터 이랬으니 심의과정에서의「가위질」은 어떠했겠는가.한마디로「몸성히」 개봉되는 영화는 손꼽을 지경이었다.
공륜 심의가 한창 칼을 휘두르던 80년대 중반엔 심의대상 영화의 90%정도가 가위질당했다.외설.폭력장면은 물론이고 조금이라도 사회의 어두운 면을 묘사한 장면이 보이면 여지없이 잘려나갔다. 걸레스님 중광(重光)의 일대기를 담은 영화 『허튼소리』를 만들었던 김수용(金洙容)감독은 10여군데가 잘려나가자『가위질 때문에 영화 못만들겠다』며 은퇴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요즘은 어떤가.한마디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을 느끼게 한다.이젠 80년대와 같은「시나리오 사전심의」도 없고,일본영화나 포르노 외엔 들여오지 못할 외화도 없다.외설과 폭력도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다.
영화인들은 이제 공륜이 있는지,없는지 모를 정도로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예전처럼 공륜에 신경쓰지 않고 얼마든지 영화를 만들고 들여올 수 있게 된 것이다.그러다 보니 이젠 거꾸로 공륜이 제구실을 못한다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왜 아 무 영화나 들여오도록 허가하고,심한 외설.폭력장면을 자르지않느냐는 것이다. 공륜은 얼마전 외화『가정교사』『올리버 스톤의 킬러』수입허가와 한국영화『미란다』의 심의와 관련해 집중적인 비판을 받았다.
『가정교사』는「실질적인 일본영화」,『올리버 스톤의 킬러』는「엽기적인 폭력」,『미란다』는「지나친 에로장면」등이 이유로 지적됐다.결국은 이 때문에 공륜위원장이 물러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공륜은 지난 10일 이례적으로「윤리위원.심의위원 공개토론회」를 열고 공륜의 위상과 심의에 대해 의견을 모았다.형식은 자체 공개토론회였지만 그동안의 비판에 대한 항변 성격이 강했다.
토론회에서 위원들은 한결같이「심의의 정당함」을 강조하고『개방화추세에 맞춘 신축적 심의결과』라며『앞으로는 심의의 잣대를 더욱 엄격히 적용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사실 이번 사태를 보면 공륜이 일방적으로 여론에 매도당한 느낌이 없지 않다.『가정교사』의 수입허가는 「합법적」이었으며 『올리버 스톤의 킬러』는 심의도 채 끝나지 않았을 때 시비가 일었고 10여분을 삭제한후 통과시켰다.또『미란다』는 외설문제로 논란이 있었던 동명(同名)연극 때문에 실제보다「뻥튀기」된 경우였다. 예술작품에 대한 심의란 비록 심의기준이 있어도 성격상 주관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또 시대분위기에 영향받기 쉽다.수학공식처럼 잣대로 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심의는 원칙적으로 없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그것이 진정한 예술의 자유다.그러나 이 자유란 예술인들의 자율과 건전한 상식이 바탕을 이뤄야 한다.최근 폭력과 에로물의 범람을 보면「심의폐지」을 선뜻 주창하고 나서기가 두려울 정도다.
최근 공륜의「새로운 다짐」이 자칫 80년대식「검열」로 회귀하지 않을까 하는 괜한 노파심마저 든다.
〈대중문화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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