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래시장터줏대감>서울이태원"USKim"양복점 김의섭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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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유에스 킴(U S Kim)」.
서울 이태원에서 30년 가까이 양복점을 하고 있는 김의섭(金義燮.57.이태원국제상가연합회장)씨를 이곳 사람들은 이렇게 부른다. 이름의 영문표기 약자이면서 양복점의 상호(U S KimTailor Company)이기도 한데 미국(US)과 불가분의관계를 맺고 있는 그의 일생을 한마디로 압축해 놓은듯한 호칭이기도 하기 때문이다.37년 5월 함경북도길주에서 태 어난 金회장은 길읍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길주중학교 2학년을 다니던중 1.
4후퇴를 맞아 월남했다.14세의 소년으로 배를 타다가 가족을 잃어버린 그는 한 경찰관의 도움으로 미군탱크부대에 취직하면서 미국인들과 끊을래야 끊을수 없는 「인연」 을 맺게 된다.
미군부대를 따라 경주.장호원.청량리.이천 등지를 옮겨다니다 어머니를 찾게 되고,불국사호텔보이.중국집배달원.개인병원조수 등을 전전하면서 스물한살의 나이로 대구서(大邱西)고등학교를 졸업했다.단국대에 1년쯤 다닌 것이 최종학력이지만 영 어실력만큼은미국인들도 놀랄정도로 지금도 완벽하다.
카투사로 군복무를 마치고 61년 사회에 첫발을 디딘 그는 미군들과의 교분을 바탕으로 경기도 평택 기지촌에서 나이트클럽과 당구장을 운영해 큰돈을 벌었으나 사기를 당해 날려버리고,「마지막이 된 심정으로」상경해 용산 미8군 영내에 전속 양복점을 오픈한 것이 양복점사업의 시작이었다.
맞춤양복을 거의 입어보지 못한 미국인들의 호기심에다 金회장의유창한 영어,미군들과의 오랜 교분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지면서그는 주한미군들 사이에 유명인사가 됐다.
그의 손에 양복을 맞춘 미군 장성급만도 1천2백명을 헤아리고레이건前대통령을 비롯한 1백여명의 상.하의원 등이 단골이다.
지금도 매년 두차례씩 미국의 주요도시를 돌며 이태원을 홍보하고 다니는데 그때 받아오는 주문만도 1백~1백50여벌에 이를 정도라고 한다.
한번 이상 다녀간 사람들의 고객카드를 소중히 만들어 보관하고있는데 적혀진 이름만 보아도 그의 관록을 짐작할 수 있다.사마란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위원장,걸프전의 영웅인 슈워츠코프,와인버거.브라운 前국방장관,역대 주한미8군사령 관,그리고 웨스팅하우스.벡텔사 회장 등등.그의 양복점 매장 벽에는 이들의 사진이 장식품처럼 둘러쳐져 있다.
이처럼 미국인들에게 호감을 주면서 오랜 영업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정직과 성실」때문이라고 그는 믿고 있다.누구의 옷을만들든『이 옷은 내가 입을 옷』이라는 생각으로 만든다고 한다.
해서 그 흔한 사환 하나 두지 않고 본인이 직접 손님을 맞는다.자리를 비우는 일이 생기면 그야말로 개점휴업인 셈이다.
상우회(商友會) 회장을 두차례나 맡아 부가세를 면제받는 영세율(零稅率)지구로 지정받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그는 지금도 상우회와 번영회를 통합한 연합회의 회장으로 다시 이태원을 대표하고 있다.
『연간 2백만명의 외국인이 다녀 가는 이태원을 관광특구에서 제외시킨 것은 부당하다』며 관광특구 지정을 받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
부인 진승옥(48)씨와 2남1녀를 두었는데 장남과 차남은 미국에 유학가 있다.
그러나 재산을 모으는데는 뛰어나지 못해 49평짜리 아파트 한채와 평택시절 사둔 1천여평의 땅,그리고 현재의 가게를 합쳐 10억여원의 재산이 전부라고 겸연쩍어한다.
李在明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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