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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책갈피] 유럽 중심주의 어떻게 역사 왜곡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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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서양문화사 깊이읽기
박준철 외 지음,
푸른역사
424쪽, 1만5000원

‘우리 시각으로 읽는 세계의 역사’를 표방한 역사책이다. 연대기적 서술 방식을 탈피해 각 시대를 대표할 만한 특정 사건과 주제를 미시적으로 접근했다. 저자는 문화사학회(회장 박준철 한성대 교수) 소속 서양사학자 13명. 이들은 “희뿌연 먼지 속에 사장된 과거가 아니라 살아 꿈틀대는 역동적 과거를 재현하려고 한다”는 포부를 밝히며, 당대의 특정 인물과 현상·사건·쟁점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했다.

책은 서양인의 눈으로 해석돼온 서양사의 감춰진 이면을 파헤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첫 장 ‘그리스 신화는 미케네 그리스사다’(오흥식)의 문제의식을 보자. 이집트·페니키아 같은 동방 문명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그리스 문명이 유럽 중심주의라는 근대적 이데올로기에 의해 어떻게 왜곡돼왔는지 풀어낸다.

예컨대 서양고대사학계의 이단아로 꼽히는 마틴 버낼에 따르면 유럽 문명의 바탕에는 그리스 문명이 있다는 그리스 원조론의 발단은 프랑스 혁명으로 소급된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은 유럽의 그리스도교적 질서에 충격을 가했다. 프랑스 혁명의 기세는 전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1806년 예나 전투에서 프로이센(독일) 군대가 나폴레옹 군대에 대패한 뒤 프로이센의 지배계층은 고대 그리스 문명의 정화인 헬레니즘을 프랑스식 혁명이념에 대한 대안으로 선택했다.

그리고 19세기 유럽학자들은 새로운 이데올로기로 부상한 헬레니즘에 힘입어 고대 그리스사를 새로 연구하기 시작한다. 당시 유럽은 대외적으로 아시아와 아프리카에 대해 제국주의 정책을 펴고 있을 때였다. 그런 정치·사회·문화적인 맥락에서 이집트와 페르키아인들이 그리스땅에 도래해 아르고스와 테베에 왕조를 창건하고 식민통치했다는 그리스 신화는 허구의 이야기로 평가절하되고 만다.

역사적 사실에서 현재적 의의, 우리 현실과의 관련성을 함께 찾아낸 솜씨도 돋보인다.

또 프랑스 혁명의 모순과 역설을 드러낸 ‘여성혁명가 구즈, 200년 만에 부활하다’(문지영)와 미국의 팽창 욕망을 읽어낸 ‘박람회와 카우보이’ (박진빈) 등도 흥미롭다. 

이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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