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검은 돈 영원히 추방할 제도 나와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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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검찰이 불법 대선자금에 대한 중간 수사결과를 어제 발표했다. 앞으로 총선과 국가 경제에 미칠 영향 등을 감안해 정치인 소환을 보류하고 기업인 처벌도 최소화하겠다는 방침이어서 다행스럽다. 그러나 "5개월간의 소란이 겨우 이것뿐인가"라는 미진함 역시 남아있다.

이번 수사는 정치.검찰사적으로 볼 때 의미가 있다. 과거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현직 대통령을 포함해 여야 대선 후보 진영의 불법 대선자금에 검찰이 최초로 칼을 들이댔다. 수사 과정에서 '차떼기' 등 정치권과 재계의 검은 거래 행태가 속속 드러났고, 대통령 측근들이 줄줄이 수감됐다.

검찰은 중간 수사결과를 발표하면서 삼성그룹이 노무현 후보 쪽에 30억원을 제공했다고 밝혔다. 이는 4대 그룹 가운데 삼성그룹만이 盧후보 캠프에 돈을 줬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한나라당 쪽에 100억원 이상씩을 '차떼기'로 건넨 나머지 기업들이 盧후보 쪽엔 한푼도 주지 않았다는 것인가. 그러니 수사의 형평성 시비가 제기되는 것이다. 검찰이 불법 자금 모금에 관여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盧대통령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를 조사하지 않은 것도 정도(正道)가 아니다. 조사 필요성을 검토하겠다며 시간을 끌다가 적당히 덮으려 해서는 안 된다. 이 부분도 끝까지 밝혀야 할 대상이다.

이번 대선자금 수사는 정경유착의 검은 고리를 끊고 정치자금을 투명화하는 계기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정치자금의 입구와 출구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장치 마련이 필수적이다. 정치권이 최근 마련한 정치개혁안은 출구 감시를 강화하는 내용들이 포함돼 있으나 입구 쪽 감시 장치는 여전히 미흡하다. 특히 거액의 불법 자금 수수를 차단할 수 있게 금융정보분석원(FIU) 같은 곳의 계좌추적 대상에 정치자금도 포함시켜야 한다. 불법 정치자금 수수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정치자금법 위반 사범에 대한 사면도 제한해야 한다. 그래야만 이번 수사가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마지막 단죄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