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포럼>모래시계의 정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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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TV드라마『모래시계』의 배경이 되었던 검찰의 5.17,5.18에 대한 조사가 거의 마무리돼 가는 모양이다.전두환(全斗煥),노태우(盧泰愚)두 전직 대통령에게 보내진 서면질의서에 대한 답변서가 제출되면 수개월에 걸쳐 진행돼온 증인들에 대한 조사는일단 종료된다.이제는 검찰이 이 사건을 어떻게 처리할는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5.17전국계엄확대 조치가 신군부의 정권찬탈을 위한 치밀한 시나리오의 일부인지,5.18 광주항쟁이 그들의 권력장악 과정의일환으로 저질러진 것인지 여부가 규명될지 관심이다.
돌이켜 보면 5共의 탄생과정에서 저질러진 이 사건들은 우리 역사의 한 치부(恥部)였고,이른바「80년대」로 통칭되는 아픔과좌절과 혼란의 10년간을 여는 도화선이었다.이 사건들에 대한 고발을 검찰이 일단 다룬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나의 진전이라고 할수는 있을 지 모른다.그러나 그것이 잘못 다뤄질 때는 역사에 또 하나의 잘못된 덧칠을 하게 될 것이다.
검찰은 지난해,12.12사태에 대해 그것을 군부의 반란이라고규정하면서도 관련자들을 기소유예 처분함으로써 검찰의「정치성」이크게 여론의 지탄을 받았었다.
이번에도 검찰이 같은 전철(前轍)을 밟을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더군다나 이번에는 4개 지방선거가 처음으로 동시에 치러지고,그 결과에 따라서는 엄청난 정치대란(政治大亂)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예상들이고 보니 그런 불씨는 결코 만 들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들 보는 것이다.
최근 이런 사건들을「정치적」으로 처리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사태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유력한 분열이 대두되고 있다.여권의 분열이 바로 그런 요인이라는 것이다.어떤 다선의 한 민자당의원은 이렇게 탄식했다.『하나회 출신은 자민련( 自民聯)에 가고,공무원은 민주당(民主黨)간다는 말들이 나돌아요.민자당(民自黨)은 다 파먹은 김치독이라는 거지… 요즘 모두들 눈치만 보는거요.』 정부의 군(軍)숙정의 결과로 물먹은 하나회출신들이 역시 군출신이었던 김종필(金鍾泌)의 자민련 으로 몰려간다는 소문이고,서울시의 현역 구청장 십여명을 포함한 상당수의 공직출신들이 민주당 후보로 출마하려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권내에 갑자기 5共세력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과거 경제성장을 주도한 세력들이 정국을 주도해야 한다는신주체론(新主體論)이니 하는 것이 모두 그런 맥락이다.
이제와서 이런 주장들이 나올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5.16군사쿠데타가 과연 우리의 역사를 진전시켰는지,3共 군사정권이 과연 우리 경제성장의 불가피한 요소였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뚜렷한 반론들이 제기되고 있다.3共 군사정권이 자원의 효율적인 배분 보다는 낭비적인 부패의 조장에 더 기여했고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정치적.경제적 민주화를 퇴보시킨 잘못이 훨씬 컸다는 것이다. 설혹 3共이 경제성장에 성공을 거두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5共의 정당성을 뒷받침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다. 5共은 부패와 무지등 군부정권의 온갖 해악을 낱낱이 노출시켰다.고문과 탄압과 폭력과 공작… 그것은 성장을 위한 것도,안보를 위한 것도 아니고 단순히 권력에 집착한 신군부의 정권욕 외에 달리 설명할 근거가 없다.
그 5共에 주도적으로 관여한 사람들이 이제와서 성장의 주체라고 주장하는 것은 후안무치(厚顔無恥)다.그런데도 그런 주장이 제기될 수 있다는 사실은 개혁을 추구해온 문민정부에는 큰 타격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문민정부의 개혁의 실패를 의미하는 것으로 까지 확대된다면 문민정부의 역사성은 실종되고 말 것이다.이것은 개혁의 중심세력을 창출하지 못한채,사회적 통합을 이룩하지 못한채,단편적으로 실시한 개혁정책의 한계일는지 모른다.
문민정부가 지금와서 개혁이라는 그들의 상표를 포기하고 다시 5共세력과 합작하고,안보를 들먹이고 한다고 그들의 세력이 회복되리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그들의 정체성(正體性)은 개혁의 끊임없는 추구일 뿐이다.그들이 집권초기 소수세 력임에도 대세를 장악할 수 있었던 개혁의 명분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것 뿐이다.5.17과 5.18에 대한 처리는 문민정부의 개혁성에 대한 하나의 바로미터가 될 것이다.
〈편집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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