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대통령 공약이라 어쨌든 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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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건설교통부(현 국토해양부)는 1월 “호남고속철도를 2012년까지 조기 완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보고하기 위해서다. 무리하게 완공 시기를 당기면 공사비가 2조원 이상 더 필요하고 환경 훼손이 우려된다는 것이 보고서 요지다. 보고서는 인수위에 전달되지 않았다.

본지는 2월 말 이 보고서를 입수해 보도했다. <본지 2월 29일자 10면> 대선 공약이라고 해도 시행하기에 앞서 다시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취지였다.

보도가 나간 날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호남고속철도)조기 완공 공약은 유효하다”며 “추진 계획을 구체적으로 마련해 발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국토해양부 공무원들은 청와대와 국가정보원의 전화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해양부의 한 관계자는 “국정원이 보고서 유출을 보안사고로 간주해 관련된 공무원을 처벌하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이후 국토해양부의 입장이 바뀌었다. “2012년까지는 어떻게든 호남고속철도를 조기 완공할 겁니다.”(국토해양부 공무원 A) “예산만 확보되면 공법상 어려울 것도 없으니 밀어붙이면 됩니다. 공약이니 추진해야죠.”(국토해양부 공무원 B) A씨나 B씨는 며칠 전까지만 해도 완공 시기를 2017년에서 2012년으로 당기는 것은 무리라고 얘기했던 사람들이다.

어떤 정책의 추진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그러나 시행하기 전에는 여론도 수렴하고 경제성이나 다른 부작용이 없는지 세심하게 따져야 한다. 공약이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한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김시곤 서울산업대 교수는 “국책사업을 경제성과 효과에 대한 치밀한 분석 없이 정치적 판단으로 무리하게 추진하면 각종 부작용이 생기고 세금을 낭비하는 결과를 낳는다”고 말했다. 정치적인 고려로 생긴 양양공항은 텅 비어 있고, 울진공항은 개항조차 못하고 있다. 새만금 사업도 비슷한 예다.

호남고속철도의 완공 시기를 당길지, 말지는 정부가 결정할 일이다. 다만 결정에 앞서 여론과 전문가들의 의견을 어떻게 반영하는지가 중요하다.

강갑생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