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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논술인문계] 사실과 의견 구분이 제시문 이해의 첫걸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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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의 기획·집필엔 서울시교육청 논술교육지원단에서 활동 중인 ▶강혜원(중동고, 도덕·윤리) ▶김광원(정의여고, 국어) ▶이만석(청량고, 국어) ▶정규희(용화여고, 사회·경제) ▶최윤정(여의도고, 영어) 선생님 등 현직 교사 5명(가나다순)이 참여합니다.

고교논술은 격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다음 호는 오는 19일에 게재될 예정입니다.

STEP 0 >> 오늘의 논술 예시

 논술의 형태가 아무리 바뀌어도 논제와 자료형 제시문을 주는 형식은 바뀌지 않는다. 따라서 논제와 제시문을 정확히 이해하고 분석하는 것이 논술 대비의 첫 걸음이다.

사실 학생들은 매일 제시문을 읽는다. 교과서·참고서·문제집·신문의 글이 곧 제시문이라는 말이다. 그런데도 논술 시험지를 받아들면 쩔쩔맨다. 실제로 대학들은 학생들이 ‘논제가 요구하는 조건을 잘 충족시키지 못한다(한양대 2007년 수시·정시 논술)’거나 ‘제시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고려대 2007년 수시·정시 논술)’고 지적했다.

그 이유는 학생들이 평상시에 읽었던 내용을 논술과 연결시키는 안목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즉 교과 내용과 일상 생활이 논술과 동떨어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논술에 대한 안목을 기르려면 무엇보다 필요한 게 이해·분석력인데 이를 키우기 위해선 실생활에서 읽는 모든 것을 판단의 근거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자면 텍스트에서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고, 의견일 경우 주장과 근거를 정리하며 읽어야 한다. 그럼 사실과 의견은 어떻게 구분할까. 아래 예시문을 통해 연습해 보자.

[예시 1] 한 남학생이 여자 A와 헤어진 뒤 여자 B의 사랑 고백을 거절하면서 “미안해 이제 내 인생에 더 이상 여자는 없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사실인가 의견인가?

[해설 1] 사실이면 남학생은 평생 여자를 사귀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의견이라면 남학생의 의견을 주장이라고 보고 근거를 확인해야 한다. 그 근거는 ‘여자 A와의 이별로 입은 상처 때문’일 수 있다. 이 근거는 거짓이 아닌 사실이다. 그러나 남학생의 주장까지 사실로 보긴 어렵다. 남학생은 그것을 그저 사실로 믿고 있을 뿐이다.

이처럼 사실과 의견은 보는 입장에 따라 다르다. 사실이 객관에 뿌리를 둔다면 의견은 주관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사실과 의견의 구분은 정보의 신뢰성을 가르는 기초 작업인 셈이다.

[예시 2] 물건을 구입할 때의 마음은 사실인가, 의견인가.

[해설 2] 이때 사실과 의견을 구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 물건이 필요한 건가. 아니면 있으면 좋은 건가로 판별하면 된다. 이 물건이 필요하다면 물건에 대한 욕구는 사실이다. 그러나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되는 거라면 그 욕구는 의견이다. 이처럼 사실과 의견은 구별하기 쉽지 않다. 따라서 이해·분석을 통한 판별력을 발휘해야 한다.

[예시 3] 고려대 2008학년도 수시2 기출 논제는 ‘제시문⑵의 논지를 밝히고, 이를 바탕으로 제시문⑶을 해설하라’고 요구했다. 이를 풀기 위해선 ‘제시문⑵의 논지’에 담겨 있는 주장과 근거를 분석해 필자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이해해야만, 다음 요구에 응할 수 있다. 제시문⑵의 논지를 잘못 파악했다면 제시문⑶에 대한 해설도 달라진다.

서강대 2008학년도 수시 2-1 기출 논제는 ‘제시문 ㈎와 ㈏는 모국어가 아닌 다른 언어의 사용을 긍정적으로 보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첫째, 제시문 ㈎·㈏에서 공통으로 제시한 논거와 실제적 조건의 차이를 밝히고, 둘째, 제시문 ㈐의 내용에 입각해 제시문 ㈎의 견해를 비판하라’고 요구했다.

이 논제에서도 제시문 ㈎와 ㈏의 주장과 논(근)거를 분석해 그 논(근)거가 실제적 조건과 어떻게 다른지 분석하도록 지시했다. 즉 의견과 사실을 비교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이때의 문제 해결 열쇠 역시 이해·분석력이다.

자, 그러면 교과서와 수능문제·실전응용문제로 사실과 의견 주장과 근거를 구분해 텍스트를 분석하는 연습을 해보자.

STEP 1 >> 교과서 열어보기

[제시문 1] 석굴암 본존불 앞에 서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화강암 돌조각이건만 따뜻한 체온이 느껴질 듯하고, 그것은 우러러보아야 하는 거대한 체구이건만 사랑방에 앉아 계신 할아버지처럼 가깝고도 자상스럽게 다가온다. 우리는 그 부처님을 우러러 뵈오며 드려야 할 말씀을 가다듬는다. “부처님, 당신은 풍만하면서도 단아하시고, 온화하면서도 준엄하십니다.” → 석굴암 본존불 앞에 선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풍만’ ‘단아’ ‘온화’와 같은 표현은 글쓴이의 의견이나 느낌을 나타낸 것이다.

[제시문 2] 강원도 정선군 남면 무릉리 발구덕 마을, 석회동굴을 들어갔다 나와서 실개천 흐르는 밭두렁에 앉았다가 귀청을 간질이는 정선 아리랑의 애절한 가락을 들은 적이 있는가? → 사실과 의견

그것은 목구멍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끝도 바닥도 알 수 없는 가슴 어느 언저리에서 울려 나오는 것 같은데 청아한가 하면 구성지고, 은근한가 하면 간절하다. 가슴을 적신다고 말해야 할까, 간장을 녹인다고 말해야 할까. → 글쓴이 의견

- 『말. 세상을 그려 낸 그림』, 심재기(국어생활, 블랙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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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 다음 사례를 통해 도출할 수 있는 결론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2007년, 경제)

[사례] 다국적 택배회사 A사는 유럽에서 빠른 배달 속도를 강조하기 위해 자동차 경주를 소재로 광고해 성공했다. 하지만 이 광고는 한국에서 별 효과를 보지 못했다. 자동차 경주가 유럽에선 인기 스포츠이나, 한국에는 덜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이에 A사는 한국에서 가족주의 전통이 강하다는 점을 고려해 “가족의 행복까지 전해 드립니다!”라는 문구를 사용했다.

① 문화는 상품화되어 국경을 자유롭게 넘나든다.

② 사회문화적 배경은 경제 행위에 영향을 미친다.

③ 세계화의 진전은 국가 간의 경제 의존도를 높인다.

④ 경제생활은 사회의 정치 발전 정도에 따라 다르다.

⑤ 다국적기업의 광고 내용은 국내법의 적용을 받는다.

해설 |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전형적인 독해 문제다. 택배 회사가 한국의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고 유럽의 인기 스포츠를 광고에 사용해 실패했다가 한국의 정서에 맞춰 소재를 가족으로 바꿔 목적을 달성한 예를 설명하고 있다. 각국의 문화는 다양하기 때문에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물건을 판매하기 힘들다는 것을 보여주는 글이다.

이를 분석하면 다국적 택배 회사가 유럽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자동차 경주를 광고의 소재로 사용한 것은 그 회사의 의견이며, 한국에서 가족주의 전통이 강하다는 것은 한국 문화에서 사실이다. 따라서 정답은 ②번이 된다.

STEP 3 >> 실전 응용하기

논제 | 학생회 역할에 대해 토의하고 있는 학생들의 주장과 근거를 서술하시오.

병인=선거 유세 때 저는 친구들에게 학생회 임원들의 역할은 학교와 학생들을 연결해 주는 실 같은 존재라고 생각한다고 말했지요. 그런데 막상 일을 시작해 보니, 여간 힘들지 않았어요. 서로의 입장이 너무 다르니까요. 그 예로 학교는 ‘대학 진학’을 강조하고, 학생들은 동아리 활동 등 활성화를 요구하는 것을 들 수 있어요. 학생회 임원들의 입장이 어정쩡하게 되었지요.

윤옥=제 입장은 다른데요. 학생회장 직을 맡은 지 얼마 안 돼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아직 모르겠지만 학생회는 철저하게 학생들의 입장에 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생회’는 말 그대로 학생들의 뜻을 반영하도록 노력하는 대변 기구가 아닐까요?

재식=학생회라고 해서 무조건 학생들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자치 기구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 민주주의적인 의사 결정 과정 그 자체를 배우기 위한 하나의 학습과정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러니까 학교 방침에 따라 선생님들이 주시는 대로 운영해 나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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