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근 화백 30주기 기념전-갤러리 현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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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8면

늙은 나무를 배경으로 함지를 이고가는 무명옷의 아낙네들,동생을들쳐업은 작은 소녀,나무밑에서 등을 돌린채 먼곳을 쳐다보는 노인등 한국인에겐 옛 기억속에서 여전히 손에 잡힐듯 생생한 장면으로 떠오르는 모습들을 그림속에 남겨놓은 박수근( 朴壽根.1914~1965)화백의 세계를 다시 보게 된다.
中央日報社와 갤러리현대는 서민들의 생활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바라봤던 朴화백의 30주기를 맞아 「박수근 30주년 기념전」을공동주최한다.
서울사간동 갤러리현대에서 20일부터 6월20일까지 한달간 개최되는 박수근전에는 『여인들』『할아버지와 손자』등 일반에 잘 알려진 작업은 물론 이제까지 몇몇 애호가들만 즐겼던 미공개 작품까지 모두 37점이 소개된다.
50년대 중반부터 60년대에 집중적으로 그린 그의 작업들은 나뭇잎 하나없이 처량한 나목(裸木)과 그와 함께 등장하는 흰 무명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들의 모습 등 항상 비슷한 테마다.
이런 그의 평생테마는 이번에 새롭게 소개되는 미공개작품 19점에서도 여전하다.
그러나 『노상(路上)』『아이를 업은 소녀와 아이들』『아이업은소녀』『두여인』등 50년대에 그려진 작업들은 朴화백 그림을 더욱 정겹게 하는,다시말해 오랜 세월의 풍화에 씻긴 화강암같은 독자적인 마티에르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여줘 오랜 만에 다시보는그의 작품들속에서 새롭게 볼거리를 제공한다.
마른 붓으로 거칠게 그린 위에 부분적으로 덧칠하는 박수근식 마티에르는 50년대에 윤곽선을 강조하고 두껍게 색을 바른 습관에서 이미 시작된 것임을 새롭게 공개된 작업들은 보여준다.
깊이와 두께를 가진채 묵직하게 다가오는 朴화백의 그림은 단순한 선으로 묘사된 간결한 내용과 겹쳐지면서 가라앉은 차분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거기에 담긴 그림 내용은 비록 요즘 한국인들이 생활의 풍요와여유를 즐길지라도 결코 잊을 수 없는 공통의 기억,가난했던 그옛날의 한 시절을 애잔하게 일깨워주면서 누구든 저절로 그의 그림 앞으로 다가서게 할만큼 흡인력을 갖고있다.
그래서 그는 짧은 근대미술의 역사 위에 선 여러 화가들을 제치고 「국민 화가」「민족 화가」로 불린다.朴화백을 평생 따라다닌 가난과 그 속에서도 사람들 사이의 애정을 잃지 않았던 삶의자세는 그런 평가가 결코 과장이 아님을 말해주는 여러 요소중 하나다. 강원도 양구출신인 朴화백은 양구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중학 진학은 아예 포기해야 할만큼 가난했다.
해방전 농민이나 일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그려 조선미술전람회에몇번 입선했지만 생활은 평양 도청서기라는 하찮은 일로 꾸려갔으며 전쟁후 한 때는 용산 미군PX에서 미군상대로 초상화를 그리기도 했다.그때 모습은 소설가 박완서씨의 소설 『나목』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그후 반도화랑을 통해 그의 작품이 조금씩 팔렸던 50년대 후반과 60년대 초 생활이 조금 안정됐지만 간경화로 죽을때까지 가난은 숙명처럼 그를 따라다녔다.
언제나 가난을 짊어지고 살았지만 그는 일을 끝내고 귀가할 때사과를 사면서도 골목어귀의 여러 행상들을 오가며 모두에게 사과한알씩을 사줄만큼 누구에게나 다감했다.
화려한 것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밋밋하기도 한 그의 그림은가난한 사람들의 삶에 따스한 시선을 보내고,가족들을 잔잔한 애정으로 사랑했던 朴화백 삶의 태도가 투영된 것이다.
朴화백의 경력도 그를 주저없이 국민작가로 부르게 한다.그는 근대미술의 숱한 작가들 가운데 유일하게 도쿄(東京)유학을 하지않은 작가다.그뿐 아니라 그는 정식 미술교육은 일절 받지 않았다. 尹哲圭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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