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과 야당은 氣싸움 중단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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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탄핵 공조가 가시화하고 있다. 민주당은 노무현 대통령이 선거법을 위반한 데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하지 않으면 탄핵소추안을 내겠다고 했고, 한나라당도 동조하고 있다. 청와대는 이를 총선을 앞둔 부당한 정치공세로 규정하고 거부했다. 이대로 가다 사생결단식 정면충돌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국민은 불안하기만 하다.

모두 스스로만 옳고 정당하다는 독선과 오만에 사로잡혀 있다. 타협과 협상의 예술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오로지 상대의 기세를 꺾어 총선에서 이기겠다는 전투적 논리만 판칠 뿐이다. 총선을 불과 한달여 남겨 놓고 국민을 볼모로 나라를 거덜낼 수 있는 위험한 도박을 하는 형국이니 참으로 딱한 노릇이다.

국민과 국가의 미래를 조금이라도 걱정한다면 양측은 이성을 회복해야 한다. 먼저 盧대통령은 자신을 뽑아준 국민의 의사를 분명히 읽을 필요가 있다. 본지 여론조사 결과 선거법 위반에 대해 '국민에게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야 한다'는 응답이 61%에 이르렀다. 대통령은 국법을 수호하고 중립적 선거관리를 책임지는 최고의 직위다. 그럼에도 헌법기관인 선관위의 위법 판정을 무시한다면 어느 입후보자가 선거법을 지킬 것이며, 총선인들 제대로 치를 수 있겠는가.

두 야당도 탄핵 카드가 어쩔 수 없는 것인지 심각하게 재고해야 한다. 기자클럽에서 질문이 나오자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지지 의사를 표시한 것이 과연 직무를 중단시켜야 할 정도로 위중한 사안인지는 여전히 논란거리다. 당장 양당 내부에서조차 반대 의견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은 대선자금 수사 국면에서 벗어나고, 민주당은 바닥을 치는 지지율을 반전시키기 위한 정략적 의도가 포함돼 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대통령과 야당은 총선을 겨냥한 기싸움을 당장 중단해야 한다. 대통령은 선거중립 의무를 위반한 데 대해 사과와 재발 방지 약속을 하고, 야당은 탄핵 추진에 신중해야 한다. 판을 깨지 말고 총선에서 유권자의 중간평가를 받는 것이 순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