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폭설에 갇힌 재해·재난 시스템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우리나라 기상관측사상 최대의 3월 폭설로 인한 재산 손실이 수천억원대에 이른다고 한다. 경부고속도로가 37시간이나 마비되고 비닐하우스와 축사의 붕괴 등 피해가 엄청나다. 예측이 어려운 자연재해였지만 정부의 안이한 대응이 사태를 악화시킨 측면이 크다. 국가 차원의 재해.재난 구호 시스템의 구축이 절실하다.

무엇보다 고속도로의 체계적인 제설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미국.캐나다.러시아에서는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곧장 제설장비를 투입해 교통소통을 최우선적으로 확보한다. 100년 만에 내린 폭설을 두고 눈이 많은 나라의 인프라를 갖추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다. 그러나 우리는 적설량이 10cm를 넘을 경우 차량통행을 제한하는 지침조차 지키지 않았으니 그 안이한 자세가 한심스럽다. 이 규정만 따랐어도 1만1000여대의 차량이 도로 위에서 하루 이상씩 갇히는 불상사는 없었을 것이다. 영하의 차량 안에서 굶으면서 밤을 지새웠거나, 무릎까지 파묻히는 눈 속을 10㎞나 걸어 음식물을 구입한 시민들을 생각해 보라. 고속도로 중앙분리대만이라도 재빨리 틔웠더라면 그런 끔찍한 일을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 정부의 주먹구구식 대처는 지난해 태풍 매미 때와 조금도 다를 바 없었다. 도로공사.건교부.행자부는 우왕좌왕하며 수습에 늑장을 부리고 현장감 없는 대책을 내놓고, 재해대책본부의 피해 집계는 늘었다 줄었다 하니 비난이 쏟아지는 것이다. 대형 재해.재난을 총괄 관리할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다.

지난달의 이상고온.폭우 등 지구온난화 현상 때문에 기상이변이 심상치 않다. 정부는 날씨변화에 따른 재해 발생이나 국가적 재난에 대한 단계별 매뉴얼을 만들어 모의훈련을 통해 상황이 발생하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해야 한다. 대구 지하철 참사 직후 설립키로 한 소방방재청의 출범도 서둘러야 한다. 1년이 넘도록 청장을 소방직이 맡느냐, 정무직이 차지하느냐며 밥그릇 싸움을 하고 있으니 국민만 눈 속에서 고생하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