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시론

화성에서 보내온 편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화성 탐사 로봇인 오퍼튜니티가 보내온 암석에 관한 데이터가 전 세계를 흥분시키고 있다. 미국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유명한 절벽 이름을 따 '엘 캐피탄'이라 붙인 길이 20m, 높이 25㎝의 이 암석의 돌출부는 여러 개의 지층을 가진 모습 때문에 탐사 로봇 도착 후부터 과학자들의 관심을 끌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은 오퍼튜니티가 특수 장비로 암반을 뚫으며 성분을 조사한 결과 화성에 물이 있었던 것 같고, 따라서 생명체가 존재할 만한 환경이 한때 성립됐던 것 같다고 발표했다. 이런 결론은 화학적 분석 결과와 지질학적 증거에 바탕을 두고 있다.

화학적 데이터의 핵심은 암석 안에 황산염 같은 광물질이 존재하는데 이 염분들은 물이 있었음을 시사한다. 또 돌을 드릴로 뚫고 들어가니 그 농도가 매우 짙어졌는데 이를 논리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길은 이런 염분들이 원래는 물에 녹아 있다가 물이 증발하면서 농축됐다는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 돌 안에서 철백반석이라는 황산철이 발견됐는데 이는 물에서만 형성되는 물질로 알려졌다.

지질학적 근거는 탐사 로봇이 사진으로 보내는 현상적 증거들이다. 예를 들어 염도가 높은 물의 퇴적층에서 주로 발견되는 조그만 홈들, 물의 파도에 의해 생겼을 것으로 추정되는 경사 지층, 물속에서 돌의 작은 구멍으로부터 광물질이 나오면서 형성됐을 법한 BB탄 크기의 공 모양 구조 등 모든 것이 물과 관련돼 있다.

이번 화성 탐사의 목적은 물의 흔적을 찾기 위해서인데 이는 지구상의 생명을 기준으로 비롯된 발상이다. 이를 이해하려면 과학자들이 지구상에서 생명의 기원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알 필요가 있다.

1938년 소련의 오파린은 원시 지구의 대기에 있는 탄소가 질소 같은 물질들과 반응해 유기물질이 합성되고 화학적 진화를 거쳐 생명의 기초물질인 아미노산 등이 생기고 이로부터 원시세포가 만들어졌다고 주장했다. 특수환경 기원설은 원시 지구의 바다 깊숙이 뜨거운 곳에 황산철.황산니켈 등이 풍부했는데 이것들이 일산화탄소.황화수소 등과 반응해 아미노산, 나아가 펩티드가 형성됐다는 것이다. 또 80년께에는 리보핵산(RNA)에 자기복제 능력과 가수분해 능력이 있다는 것이 밝혀짐에 따라 RNA가 생명의 기초물질이라는 이론이 제기됐다.

이 세 가지 이론은 상호보완성을 띠고 있다. 즉 오파린설은 단순한 화학물질에서 복잡한 유기물로 진화하면서 생명체가 생겼다는 것이고, 특수환경설은 그러한 반응들이 바다 속 깊고, 뜨거운 곳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며, RNA설은 가장 세련된 형태의 유기물질이 RNA라는 것이다.

초기 생명의 외계 유입설도 있다. 지구 나이는 45억년 정도고, 가장 오래된 생명체의 화석은 38억년 전의 것인데, 지구가 생겨난 첫 5억년 동안 엄청난 지각변동 때문에 생명체가 생겨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모든 이론은 기본적으로 물이 있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거의 모든 주요 반응들은 물속에서 일어났으며 초기 세포도 물속에서 만들어지고 살아갔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화성에서의 발견은 물이 있었다는 흔적이 있는 것 같고, 따라서 생명체가 살 만한 환경이 존재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할 뿐이다. 지금 물이 존재한다는 것도 아니고, 물이 언제쯤 존재했는지, 그 물이 어디로 어떻게 없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른다.

인류에 가져다 줄 직접적 이득이 거의 없는 이 사업에 왜 미국은 그토록 많은 돈과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것일까. 생명의 기원, 우주탐사, 외계 생명의 존재는 인간에게 가장 근본적인 도전이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미국은 자국민의 자긍심을 한껏 부양함은 물론 지식과 상상력의 지평을 한없이 넓혀주고 있는 것이다.

김선영 서울대 교수.화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