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방미 출발 30분전 "만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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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미국은 '자주파와 동맹파' 논란 속에 전임 윤영관 장관이 물러나고 후임으로 등장한 반기문 장관에 대해 여러 가지로 신경쓴 흔적이 있다.

우선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이 가장 파격적이었다. 전임 尹장관도 부시 대통령을 만났지만 콜린 파월 국무장관이 회담을 마친 후에 尹장관을 데리고 백악관에 가 인사를 시키는 정도였다. 외국 정상이 아닌 외무장관들이 백악관에 오면 '잠깐 들러 대통령과 몇 마디 얘기하는'게 관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엔 콘돌리자 라이스 안보보좌관을 비롯해 백악관과 국무부 관계자들을 배석시키고 약 30분간이나 계속됐다. 부시 대통령은 북한의 장래 등에 대해 큰 관심을 표시하면서 "북한 주민의 고통을 이해하며, 도와주고 싶지만 북한이 우리 입장을 오해하면 안 된다"면서 핵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4일에는 파월 국무장관이 "양국 관계에선 신뢰가 중요하고, 장관끼리도 신뢰를 쌓자"면서 潘장관과 배석자 없이 만났다.

5일엔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국방부 앞에서 의장대를 도열시킨 채 潘장관을 맞았다. 럼즈펠드 장관은 "한국에서 대규모 사절단이 온 거냐, 그러면 우리 다 이라크로 가자"는 농담도 했다.

또 롤리스 부차관보를 가리키며 "저 사람이 한국말 좀 한다는데 A.B.C 중 어느 정도냐"고 潘장관에게 묻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런 환대의 배경에 대해 潘장관은 5일 워싱턴 특파원들과 만난 자리에서 "무엇보다 이라크 파병에 대한 감사 표시의 성격이 제일 강한 것 같더라"고 느낌을 말했다. 또 "미국이 이번 기회에 한.미관계가 여전히 튼튼하다는 걸 보여주려는 생각도 갖고 있는 듯했다"고 덧붙였다.

潘장관 일행은 당초 부시 대통령 면담을 일정에 잡지 못했다. 그러나 인천공항 출발 30분 전에 갑자기 백악관에서 "만나겠다"는 통보가 왔다. 潘장관은 비행기 안에서 부시 대통령에게 전할 얘기를 부랴부랴 메모했다고 한다.

따라서 의전 문제는 신경쓸 겨를조차 없었다. 지난 2일 오전 11시40분, 백악관을 찾은 潘장관 일행은 적잖이 당황했다. 백악관 의전팀에서 "사진사는 어디 있느냐"고 물어왔기 때문이다. "김숙 북미국장이 디지털 카메라를 갖고 있으니 金국장이 찍으면 안 되겠느냐"는 답변에 백악관 측은 어이없어 했다고 한다. 金국장은 부시 대통령과 潘장관이 자리에 앉는 사이에 몇 장을 찍었다고 한다.

이에 앞서 潘장관을 태운 비행기는 2일 오전 10시쯤 워싱턴 댈러스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공항에서 백악관까지 이동시간 등을 고려하면 일정이 조금 빠듯했다. 혹시라도 미국 대통령과의 면담 약속에 늦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질까봐 대한항공기 기장은 비행기 속력을 최대한 높였고, 1시간이나 일찍 착륙했다고 한다. 이 바람에 마중을 나오던 한승주 주미대사는 潘장관이 공항을 떠날 때쯤 도착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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