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공열전>3.팔당면 터줏대감 손낙기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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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조선시대 사농공상(士農工商)4계급중 사(士)를 제외하고는 농공상인들이 낚시를 한다는 것은 「천벌」을 받을 죄악이었다.
이러한 시대에 일반인들이 낚시를 용인받을 수 있는 두가지 형태의 낚시가 있었는데 하나는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의 낚시요,또하나는 천렵(川獵)이라는 형태의 낚시였다.
孫낙기씨(66)의 낚시역사는 13대 조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4백년전 지금의 팔당 배알미 근처에 정착한 孫씨의 선대는 한강에서 농사를 지으며 생활보조수단으로 낚시를 했고 그 낚시의맥은 孫씨까지 이어졌다.
「쇠뼈 숭어낚시」는 낚시를 대물림해 온 孫씨 집안의 트레이드마크로 孫씨가 어린시절 즐기던 낚시였다.
『이른 봄철이 되면 장정 팔뚝만한 숭어떼들이 팔당까지 몰려들었지.이때 팔당사람들은 서울에서 소 방치뼈를 구해와서는 초생달모양으로 뼈를 깎아 양쪽에 구멍을 뚫은 뒤 한쪽에는 낚시바늘을달고 다른 한쪽에는 낚시줄을 매어 막대기에 연 결하면 훌륭한 채비가 됐지.』 孫씨는 쇠뼈로 숭어를 잡던 회고담을 털어놨다.
『강가로 살금살금 기어가 쇠뼈로 만든 숭어채비를 살짝 던져놓고「엎드려 뻗쳐」자세로 모래언덕 뒤로 숨었지.그것도 모르고 숭어들이 희희낙락하며 쇠뼈의 등을 타고 넘을 때 살그머니 일어나 두 손으로 막대를 잡고 하늘로 힘껏 채면 두세 마리의 숭어가 하늘로 날았다가 모래바닥에 떨어졌지.운좋은 날이면 말이야.』 어린 손낙기는 이런 날이 너무나 좋았다.
孫씨의 팔당 주변 농토는 어느덧 댐건설로 수몰됐다.
『안타까운 일이지.내 인생이야 흔적없이 사라진다해도 어쩔 수없는 노릇이나 억만년을 굽이쳐 흐른 한강의 옛모습은 점차 자취를 감추어가니….』 ▲자료제공.도움말:송우(宋祐.전국낚시전문가회의 대표) 方元錫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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