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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형문화재전수자>3.갓만들기 장인 박창영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46면

품이 넉넉한 도포에다 정갈하게 얹어올린 갓-.
그 옛날은 아예 그만두고 양복이 구경거리이던 시절만해도 우리남정네들이 기품을 잡기 위해 갖추곤 했던 바깥차림의 기본이다.
특히 이 중에서도 갓은 신분과 인격의 상징으로 더욱 중요시돼 입성이 다소 처지더라도 갓만큼은 언제나 깔끔하고 의젓해야 했다. 하지만 겉치레의 됨됨이에 대한 잣대가 바뀌어버린 오늘,이같은 신사(紳士)의 모습을 그려보는 것조차 퀴퀴하게 여겨질 판이건만 갓장이 박창영(朴昌榮.52)씨는 아직도 날마다 갓 짓는 일로 주름살을 그어가고 있다.그래서 그가 사는 서울 구로구독산2동1046의10 집의 두어평 남짓한 공방은 시간이 정지된 공간이다. 『전통의 맥을 잇기 위해 전업이랍시고 이 일에 매달리고 있기는 하지만 워낙 세밀한 손이 타는 작업인데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눈까지 침침해져 요즘에는 한달이라야 고작 두세개 짓기가 힘듭니다.주문량도 그것밖에 안되고요.』 갓일은 차양 부분인 양태(凉太),모자격인 총모자를 만드는 일과 이 둘을 이어 조립하는 갓모으기등 크게 세갈래 역할이 고루 잘 엮여야 제물건이 나오는 대표적인 분업형태의 작업.때문에 입자장(笠子匠)인 朴씨가 하는 일이란 양태장과 총 모자장이 제각기 완성(?)한 작품들을 모아 또다시 완전한 형태의 갓을 완성하는 마무리 작업이다.하지만 말하기 쉬워 마무리지 원래는 갓모으기만 해도▲머리카락같은 줄을 고르게 하는 「골뱅이하기」▲모자와 양태를 잇는 부분인 「은각모으기」 ▲명주를 입히는 수장하기▲양태에 아교풀.
먹을 섞어 바른 뒤 트집을 잡는(은근하게 들어가도록 모양새를 내는 일)「보랑잡기」등 네사람이 나눠 하는 일.
이 모든 걸 혼자 해내려니 朴씨로선 일의 진도도 그렇지만 이래저래 죽을 맛이다.제대로 작품하나 만드는데 하루 예닐곱시간씩꼬박 달포의 공력을 쏟아야 한다.
내력을 따지자면 증조부때부터 해오던 일로 朴씨 자신도 중학을졸업한 뒤 본격적으로 배워 30여년이 흘렀건만 『아직도 멀었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갓에 관한한 통영과 맞먹을정도로 이름났던 경북예천 돌태마을이 고■인 그 가 중요무형문화재 제4호 갓일(입자장)의 기능보유자 후보로 지정된 것은 재작년의 일.백부등 집안어른들로부터 바탕기술을 익힌 뒤 아버지 친구가 운영하던 대구 최대의 갓방에 유학(?)까지하고 나서 얻은자격증인 셈이다.하지만 이제 갓 자체가 잊혀져갈 뿐만 아니라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조차 없어 오늘도 갓과 씨름하는 朴씨의 공방은 더욱 쓸쓸하기만 하다.
李晩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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