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컴의 오른발, 상암벌 흔들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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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호 25면

데이비드 베컴이 자신의 전매특허인 오른발 킥을 선보이고 있다. 그는 선제골을 어시스트했다. [최정동 기자]

서울월드컵경기장으로 가는 지하철 6호선은 합정역에서 지하철 2호선과 만난다. 국가대표 간 경기(A매치)가 열리는 날은 합정역이 크게 붐빈다. 1일 오후 4시30분에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모토로라컵 LA 갤럭시 코리아투어(모토로라ㆍ일간스포츠 주최, 중앙일보 후원)가 열렸다. 데이비드 베컴이 뛰는 미국 프로축구 LA 갤럭시와 한국 프로축구 FC 서울이 맞붙은 이날 합정역은 그리 복잡하지 않았다. 외국인과 젊은 여성이 눈에 띄게 많았다는 점이 평소와 달랐다. 20대 여성에게 “베컴이 뭐가 그리 좋은가요” 물었다. “멋있잖아요.” 옆의 친구가 맞장구쳤다. “섹시하잖아요.”

LA 갤럭시 대 FC 서울 경기 관전기

경기가 벌어지기 한 시간 전에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나와서 몸을 푼다. 베컴은 동료와 함께 몸을 풀다가 먼저 라커룸으로 들어갔다. 그는 음악을 들으며 눈을 감고 조용히 이미지 트레이닝을 한 뒤 축구화를 신었다. 가수 빅토리아의 남편인 베컴은 음악을 좋아한다. 베컴은 1998년 프랑스월드컵 콜롬비아전 전날, 팀 훈련이 끝난 뒤 미국 랩 가수인 투팍의 노래를 최대한 크게 틀고 두 시간 동안 프리킥 연습을 했다. 그리고 다음날 프리킥으로 골을 넣었다.

6만5000석의 관중석은 절반 정도밖에 차지 않았다. 전날 청계광장에서 열린 프리킥 시범에 베컴을 보기 위해 수천 명이 몰렸고, 명동에서 열리던 팬 사인회는 사고가 날 것 같아 중단됐다. 베컴을 보기 위해 전남 여수에서 올라온 사람도 있었다. 지난해 7월 20일 같은 장소에서 같은 팀을 상대로 한 잉글랜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경기는 입추의 여지 없이 꽉 찼다. 사람들은 ‘베컴의 경기’를 보기보다는 베컴이라는 뉴스메이커를 보고 싶어한 것 같았다.

경기가 시작됐다. FC 서울의 손님 접대는 사나웠다. 전반 6분, 센터라인 근처에서 볼을 잡은 베컴을 향해 이청용이 뒤에서 거친 태클을 했다. 쓰러졌던 베컴은 벌떡 일어나 득달같이 이청용을 향해 달려들었다. 98프랑스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의 시메오네에게 보복 행위를 해 레드카드를 받은 장면이 오버랩됐다. 이 퇴장으로 베컴은 최악의 나락으로 굴러떨어졌다. 승부차기 끝에 잉글랜드가 패하자 베컴을 향한 비난은 거의 테러 수준이었다. ‘10명의 용감한 사자와 한 얼간이’라는 신문 제목은 점잖은 편이었다. 한 신문은 베컴의 얼굴을 다트 판으로 만들었다. 견디다 못한 베컴 가족은 미국 뉴욕으로 도망치듯 떠났다.

전반 20분 베컴의 발끝에서 골이 터졌다. 센터 서클을 살짝 벗어난 지점에서 얻은 프리킥을 베컴이 오른발로 감아찼다. 서울 수비수들을 비켜나간 볼은 페널티지역으로 쇄도하던 앨런 고든에게 정확하게 전달됐다. 가슴으로 볼을 잡은 고든은 몸을 날려 멋진 발리슛을 성공시켰다.

전반 30분 서울 정조국이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정조국이 과감하게 골문 정면을 향해 슈팅을 했고, 볼은 그물을 갈랐다. 베컴이 2002년 한ㆍ일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넣은 페널티킥 장면과 흡사했다. 일본 삿포로돔에서 열린 이 경기에서 전반 43분 마이클 오언이 페널티킥을 얻었다. 베컴은 큰아들 브루클린의 이름을 새긴 축구화를 신은 오른발로 정면을 향해 강하게 킥을 했다. 골을 확인한 베컴은 코너 깃발 쪽으로 달려가 멋진 골 뒤풀이를 했다. 베컴은 자서전에서 ‘이 골을 통해서 나는 비로소 생 테티안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아르헨티나전 퇴장)을 영원히 묻어둘 수 있게 되었다’고 밝혔다.

51분(후반 6분)이 지났다. 애초 베컴은 최소 51분을 뛰기로 계약이 돼 있었다. 이후에는 언제든 교체될 수 있었지만 그는 후반 마지막까지 뛰었다. 베컴은 후반에는 오른쪽에 머물면서 움직임을 최소화했다. 그러나 갤럭시의 중심은 여전히 베컴이었다. 90분 경기가 1-1로 끝나자 관중은 아쉬움 속에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런데 웬 보너스인가. “친선경기지만 오늘은 승부차기로 승부를 낸다”는 방송이 나왔다. 선축한 갤럭시의 1번 키커는 베컴이었다. 베컴은 예상대로 한가운데로 강한 킥을 성공시켰다. 그러고는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리며 야유하던 서울 서포터스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서울은 나머지 네 선수의 킥을 모조리 막아낸 골키퍼 김호준의 신들린 선방에 힘입어 승부차기 2-1 승리를 거뒀다.

경기 후 베컴은 “전반 경기 내용은 좋았지만 승부차기에서 져서 실망했고, 운이 좋지 않았다. 그렇지만 여러분의 환대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베컴은 패션 리더로, 뉴스 메이커로 한국에 와 서울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정작 그의 진가는 그라운드에서 드러났다. 베컴은 자신의 패션 감각에 대한 질문을 받자 “패션에도 신경을 쓰지만 언제나 내 최고 관심사는 축구를 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었다. 꽤 쌀쌀한 날씨에, 적지 않은 돈을 내고 서울월드컵경기장을 찾은 3만5000여 명의 사람들은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진짜 데이비드 베컴’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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