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버냉키 “미국 경제 침체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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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 대통령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백악관 기자회견에서 “미국 경제가 침체로 가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번 대선에서 경제 침체 때문에 공화당 후보가 질까 봐 걱정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다. 부시 대통령은 “나도 경제가 걱정되며 성장이 둔화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침체 가능성만큼은 강하게 부정했다.

그는 일부 의원이 추가 경기부양책을 거론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도 거부 의사를 밝혔다. “당분간 기존 부양책이 약효를 내는 걸 지켜보는 게 어떠냐”는 것이다. 부시는 최근 총 1680억 달러 규모의 긴급 경기부양 법안에 서명했다. 가구당 최대 1200달러의 세금을 돌려주는 것이 골자다. 부시는 달러 약세에 대해서도 낙관론을 폈다. “미국 경제가 여전히 강한 성장 펀더멘털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상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한 버냉키 FRB 의장 역시 모처럼 목소리에 힘을 줬다. 그는 1970년대를 휩쓴 스태그플레이션을 언급한 뒤 “현재 우리는 70년대 상황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기 침체 속에 물가가 뛰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한 항간의 우려를 일축한 것이다. 그는 석유·식품 등 원자재 값 상승에 대해서도 “몇 달 내에 상승세가 꺾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지만 더 경기가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지금은 성장 둔화 위험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부동산에 많이 투자한 몇몇 소규모·신생 은행들이 파산할 수 있다”는 경고도 했다. 월가에선 이를 현재 3%인 기준금리를 추가로 내릴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했다.

미국 언론들은 그러나 두 사람의 진단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이다. AP통신은 “많은 경제전문가들이 이미 침체가 시작됐거나 조만간 시작될 것이라고 보고 있다”며 “부시 대통령의 전망은 이에 비해 확실히 장밋빛”이라고 전했다. 블룸버그 통신도 “버냉키의 발언은 FRB의 급격한 금리인하가 인플레이션을 가중시킬 것이라고 우려하는 의원들을 달래기 위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각종 지표도 썩 좋아 보이지 않는다. 미 상무부는 이날 지난해 4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0.6%였다고 발표했다. 3분기(4.9%)의 8분의 1 수준이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의 4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중질유(WTI)는 전날보다 2달러 이상 오른 배럴당 102.59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금값도 온스당 970달러를 넘어섰다. 석유와 금값 모두 역대 최고치다. 금값은 온스당 1000달러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부시와 버냉키도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다. 부시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과 노동부 방문을 마친 뒤 “미국은 내 임기 동안 몇 차례 불확실성의 시기를 이겨냈다”며 “이번에도 그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선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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