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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필 평양 공연에 숨겨진 코드] ① '미국적인, 너무나 미국적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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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이번 평양 공연에서 주목할 만한 코드가 여럿 보인다. ‘미국적인 것’과 ‘금기 깨기’가 대표적이다. ‘싱송(sing-song)외교’의 숨은 의도는 연주 곡목 선정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이번 평양 공연에 숨겨진 코드를 소개한다.

이번 공연은 북한 국가인 ‘애국가’를 시작으로 미국 국가인 ‘별이 빛나는 깃발’, 리하르트 바그너의 오페라 ‘로엔그린’ 중 제3막 전주곡, 안토닌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 조지 거쉰의 ‘파리의 미국인’을 연주했다. 또 비제 ‘아를의 여인’ 제2모음곡 중 제4곡 파랑돌(Farandole), 레너드 번스타인의 오페레타 ‘캔디드’ 서곡으로 이어졌으며 북한 작곡가 최성환의 ‘아리랑’을 마지막으로 끝났다. 이 곡들을 한번 뜯어보면 뉴욕 필의 의도가 읽힌다. 음악만으로도 많은 말을 하려 한 듯 하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미국적인, 참으로 미국적인’ 음악, 평양에 울려 퍼지다=안토닌 드보르작(1841~1904)은 북한에서도 친숙한 이름이다. 1991년 동구권 몰락 전까지 사회주의 국가로 북한과 잘 지냈던 체코 출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으로서도 별 거부감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첫날 공연에서 연주된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는 체코보다 미국 색채가 더욱 짙은 곡이다. 드보르작은 1893년 뉴욕에서 이 곡을 작곡했다. 이 곡은 1883년 12월16일 뉴욕 카네기홀에서 뉴욕필에 의해 초연됐다. 드보르작은 1892~95년 미국 뉴욕에 있는 국립음악원(National Conservatory of Music) 원장으로 일했으며, 이 곡은 그 시기에 만들어졌다.

게다가 2악장 라르고의 주요 멜로디는 미국 흑인 민속음악에서 따온 것이다. 흑인 바리톤 가수 겸 작곡가 해리 벌리가 흑인 민속음악을 바탕으로 만든 ‘고잉 홈’이라는 곡에서 모티브를 땄다. 벌리는 드보르작이 ‘신세계로부터’를 작곡할 때 조수로 일했다. 그는 미국 음악에 관심이 많았던 드보르작에게 흑인 민속 음악을 소개했다. 미국 흑인 민속 음악이 작곡가가 만든 교향곡의 주요 부분이 된 것은 이 곡이 처음이다.

노래의 표제인 ‘신세계로부터’는 물론 곡 전체에서 당시 유럽인인 드보르작에게 신세계였을 미국에 대한 애정과 감탄이 느껴진다. 합스부르크 왕조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치하의 보헤미아에서 소수민족으로 태어나 왕정의 모순에 살던 드보르작에게 왕도 귀족도 없이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향유하는 미국은 분명 새로운 세계였을 것이다. 결국 ‘신세계로부터’는 다분히 미국적인 음악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뉴욕필이 평양 연주에서 이 곡을 택한 이유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뉴욕 필이 평양에서 미국 국가를 연주한 것에 버금가는 의미가 담긴 셈이다.

거쉰이 작곡한 ‘파리의 미국인’은 미국 음악인 재즈를 클래식 음악에 접목한 최초의 곡으로 평가 받는다. 유대인인 거쉰은 브로드웨이와 할리우드, 그리고 대중가수를 위한 곡도 많이 작곡했다. 그래서 참으로 미국적인 음악가이기도 하다. ‘파리의 미국인’ 연주에 앞서 지휘자 로린 마젤이 “'평양의 미국인‘이란 곡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음악과 함께 이 짧은 말에 그는 아주 긴 말을 북한 관중에게 전하려 한 것 같다.

김진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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