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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London 은 클래식에 젖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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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런던은 사실 클래식 음악의 전통이 별로 없는 도시다. 바흐부터 시작해 베토벤·슈만·브람스 등 굵직한 작곡가를 배출하고 정통을 주장하는 곳은 독일의 도시들이다. 전후 경제부흥으로 문화 황금기를 맞았던 미국에 비해서도 내세울 것이 없었다. 에드워드 엘가(1857~1934)라는 걸출한 작곡가가 나오긴 했지만 그 후에는 이렇다 할 인물이 없다.

그런데 김선욱은 현재 런던을 “아티스트들이 가장 연주하고 싶어하는 도시”라고 소개했다. “세계적 매니지먼트 회사(아스코나스 홀트)와 음반사(EMI) 본사가 자리하고 있어 클래식 비즈니스의 중심으로 부각되는 곳”이라는 설명이다.

현재 런던에는 5개의 일류 오케스트라가 상주하고 있다.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LPO),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LSO),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필하모니아다. LPO의 음악감독 티모시 워커는 전화통화에서 “뉴욕에는 뉴욕필하모닉 한 개뿐인 것과 비교해 볼 때 엄청난 숫자”라고 말했다. 이 오케스트라들은 매년 9월부터 다음해 5월까지 정기연주회를 연다. 비슷한 시기에 한 오케스트라당 40여 회의 연주회를 열기 때문에 청중 모시기 경쟁이 치열하다.

런던 오케스트라들이 한 프로그램을 두 번 이상 연주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몇 개의 곡으로 ‘재탕’하지 않고 연주회마다 곡목을 다시 구성한다. 워커 감독은 “청중이 선택할 수 있는 공연이 수없이 많기 때문에 지루한 레퍼토리를 내놓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LPO의 경우 이렇게 치열한 경쟁을 거친 결과 시즌 평균 84%의 좌석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연주단체가 많으면 자연히 아티스트의 공연 기회가 늘어난다. 알프레트 브렌델(체코), 안드라스 시프(헝가리),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러시아), 베르나르트 하이팅크(네덜란드) 등 태생이 다른 연주자들이 런던에 사는 이유다. 런던이 자랑하는 공연장인 ‘사우스뱅크 센터’의 청중 중 관광객 비율은 약 25%. “런던에서 연주하면 세계의 청중을 만난다”는 말이 나온다.

지난해부터 비발디의 ‘사계’로 전세계 순회연주를 하고 있는 바이올리니스트 사라 장이 무참히 혹평을 들은 곳도 영국이다. 지난해 10월 영국 공연이 끝난 후 신문 ‘더 헤럴드’는 “비발디를 람보 스타일로 잔인하게 짓밟은 연주”라고 깎아 내렸다. 파워 넘치고 강한 스타일로 연주한 데 대한 평가였다.

1979년부터 런던으로 이주해 살고 있는 안드라스 시프는 “혹독한 비평은 영국 청중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내한 연주를 위해 이달 한국을 찾은 그는 “수십 년째 런던에 살고 있지만 청중들이 차갑다는 느낌은 여전하다”며 “연주자들은 항상 긴장한다”고 전했다. “객석에게 커튼콜 세 번 이상을 받으면 대단한 성공으로 기록된다”는 것이다. 가디언·인디펜던트 같은 신문은 연주자의 명성이나 경력에 상관없이 수준만을 평가하기로 유명하다.

최근 런던에는 새로운 풍경이 생겼다. 템스 강변의 로열 페스티벌 홀이 2년 동안의 리노베이션을 거쳐 지난해 9월 재개관하면서 새로운 랜드마크가 됐다. 51년 문을 연 이래 최대의 공사였다. 이 홀의 상주 오케스트라인 LPO의 사라 태터잘 매니저는 “이번 리노베이션의 가장 큰 특징은 시민들에게 개방된 공간을 늘린 것”이라고 말했다.

6층으로 된 전체 건물 중 1층과 6층에만 드나들 수 있었던 시민들은 이제 각 층마다 마련된 휴식공간에서 자유로이 시간을 보낼 수 있다. BBC 사옥, 영국대사관(더블린) 등을 만든 건축가 밥 앨리스와 그라함 모리슨에게 디자인을 맡겨 새 건물이 완성했다. 주말 공연이 끝난 후 이곳 3층에 위치한 레스토랑(Skylon)의 강변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1인당 100파운드(약 19만원)이 필요할 정도로 인기다. 시민에게 사랑받는 공연장은 클래식 음악계에서 날로 높아지고 있는 런던의 위상을 상징하고 있다.

일부에선 런던과 영국이 클래식 음악의 새로운 수도로 떠오르고 있는 것을 두고 존 게이(1685~1732)를 회상하기도 한다. 시인이자 극작가였던 그가 1728년 쓴 ‘거지의 오페라’는 최초의 오페라 대본으로 기록된다. 이 대본을 가지고 한 오페라 공연의 수익금으로 지어진 곳이 런던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다. 최근 가장 까다롭게 출연 가수를 고르기로 유명한 이곳이 영국의 옛 영화를 기억하고 있다.

한국에도 런던의 오케스트라가 들어온다. 3월 11일(세종문화회관)에는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과 함께, 13일(예술의전당)에는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함께 무대를 꾸민다. 런던 체임버 오케스트라는 11월 첼리스트 장한나와 함께 런던의 실내악 음악을 전한다.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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