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40분 길' 7시간반에도 못 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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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5일 눈 속에 파묻힌 충청권 고속도로는 마치 강원도 산간의 고립된 마을을 연상시켰다. 수천대의 버스와 승용차들이 오도가도 못하는 상황에서 아침부터 쏟아진 눈을 맞으며 기약없이 서 있었다. 오후가 되자 일부 운전사들은 차를 버리고 하나 둘씩 인근 국도로 빠져나갔다. 허기와 추위를 피해 상가에서 먹을 것을 구하거나 열차로 갈아타기 위해서였다.

회사원 최기태(35.충북 청주시 봉명동)씨가 충남 천안에 있는 직장에 가기 위해 청주 집을 나선 시간은 이날 오전 8시30분. 막힐 것을 예상해 평소보다 30분 일찍 출근을 서둘렀다. 崔씨는 그러나 출근은커녕 점심도 거른 채 오후 4시가 돼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평소 40분가량이면 충분하던 길이 7시간30분이나 걸린 것이다. 차도 물론 고속도로 갓길에 두고 왔다.

崔씨는 이날 아침 눈이 내리는 청주 시내를 엉금엉금 기다시피 빠져나가 1시간30분 만에 경부고속도로 청주 인터체인지에 도착했다.

하지만 정작 고생길은 고속도로에 진입한 뒤 시작됐다. 거의 정지상태로 세시간 동안 꼼짝 못했다고 한다. 1km쯤 진행한 지점에서 "도저히 못 가겠다"고 직장에 휴대전화로 알렸다. 뒤늦게 출근을 포기하는 바람에 차를 세울 갓길을 찾는 데도 한참 고생했다.

천안.서울행 고속버스는 아예 청주 인터체인지 부근에서 승객들을 내려주고 있었다. 이곳에서 10여km 떨어진 곳에 조치원역이 있기 때문이다.

버스에서 내린 승객들이 지나가는 승용차.트럭 등을 잡아 타는 모습이 곳곳에서 보였다.

崔씨도 집으로 다시 돌아가기 위해 차를 얻어 타려 했으나 20여명이 몰려드는 바람에 포기하고 걷기 시작했다. 崔씨는 "언뜻 전쟁 피난길이 이와 같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차에 두고 올 수 없어 가져온 노트북이 그렇게 거추장스러울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배가 고파 길 옆의 음식점에 들어가 봤으나 이미 허기진 사람들로 만원이었다. 한 1km를 걷다 겨우 트럭을 얻어 탈 수 있었다. 그러나 국도 위 차들도 마찬가지로 꼼짝을 못했다. 다시 내려 2km를 걸어 청주역에 도착해서야 겨우 택시를 타고 집에 올 수 있었다.

청주.대전=조한필.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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