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미국대선] 11연패 힐러리 사퇴절차 밟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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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에서 버락 오바마 상원의원에게 잇따라 패배한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진영에서 이상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고 뉴욕 타임스가 25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수퍼 화요일(2월 5일)’ 이후 열린 11차례 경선에서 전패하면서 힐러리 참모진의 사기가 눈에 띄게 떨어졌고, 힐러리 본인도 자신감을 잃은 채 사퇴를 예고하는 듯한 언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신문은 힐러리의 측근들을 인용해 힐러리가 친구들과의 통화에서 더 이상 “내가 대통령이 되면”이라는 단골 어구를 쓰지 않는 대신 “승자가 있으면 패자도 있게 마련”과 같은 ‘철학적’인 얘기를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지지자들에게 “그동안 경선에 출마할 수 있게 도와줘 고맙다”고 말하는 등 ‘철녀’로 불릴 만큼 자신만만했던 모습과는 거리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주 텍사스주에서 열린 오바마와의 TV토론에서 힐러리가 “오바마랑 토론하게 돼 영광이었다. 우리 둘 사이엔 결국 아무 문제도 없게 될 것”이라며 고별사처럼 느껴지는 발언을 하면서 사퇴설이 증폭되고 있다.

힐러리 참모진은 700명의 인력과 1억 달러 이상의 선거자금, 미 전역에 걸친 조직을 갖고도 ‘오바마 돌풍’을 막지 못한 데 대해 좌절감을 토로하고 있다. 이들이 지적하는 가장 큰 실책은 수석 선거전략가인 마크 펜과 선거 캠프 책임자였던 패티 솔리스 도일의 무능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을 전면에 내세운 것도 패착이란 지적이다. 힐러리의 집권을 클린턴 왕가의 부활로 여기는 ‘클린턴 피로증’만 부추겼다는 것이다. 자연히 참모 간 불협화음이 커지고 캠프의 기강도 떨어졌다. 지난 13개월 내내 새벽에 출근해 심야에 퇴근하던 참모들이 요즘엔 오후 9시에 휴대전화를 꺼놓고 퇴근해 버리는가 하면 일부는 며칠씩 휴가를 떠나기도 했다.

◇네이더, 대선 출마 민주당에 독 될까=24일 미국의 소비자 운동가 랠프 네이더(73)가 무소속으로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밝혀 민주당에 비상이 걸렸다. 올해로 다섯 번째 대선에 출마하는 네이더는 2000년 대선 때 최대 격전지였던 플로리다주에서 앨 고어 민주당 후보의 표를 잠식해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당선되는 데 크게 기여했다. 힐러리는 이 사실을 지적하면서 “네이더의 출마 결정은 정말 불행한 일”이라고 비난했다. 반면 공화당 대선 주자인 마이크 허커비 전 아칸소 주지사는 “네이더가 민주당 표를 가져갈 것”이라며 “공화당은 그의 대선 출마를 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강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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