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터키 등 신흥시장 은행들 사모펀드 M&A‘돈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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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월가의 대형 은행들이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로 위기를 겪는 사이 한국 등 신흥시장 은행이 기업 인수합병(M&A)을 추진하는 세계 사모펀드(PEF)의 돈줄로 떠올랐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FT)는 최근 “한국과 터키·중국 은행이 기업을 사들이려는 사모펀드에 유리한 조건으로 돈을 빌려주고 있다”고 보도했다. 신문에 따르면 터키 그란티은행 등 3개 금융회사는 지난주 사모펀드인 BC파트너스가 터키의 대형 유통업체인 미그로스를 인수하는 데 17억 달러를 지원했다.

한국의 신한은행도 주요 사례로 올랐다.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와 호주계 맥쿼리가 지난해 말 수도권 최대의 케이블TV업체인 씨앤앰(C&M) 지분을 32억 달러에 사들이는 거래를 할 때 신한은행이 자금 지원을 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국내 은행이 M&A 과정에서 돈을 빌려준 것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두산인프라코어가 미국의 건설장비 회사인 밥캣을 51억 달러에 인수할 때 38억 달러를 산업은행 등 국내 10개 금융회사가 빌려줬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국내 은행이 M&A 자금을 대출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며 “이런 대출에 외국 언론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그만큼 미국과 유럽의 은행이 서브프라임 위기로 어려운 처지에 몰려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말했다. FT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막대한 손실을 입은 월가의 대형 투자은행들은 이미 거래가 체결된 사안에도 자금을 빌려주기 어려운 형편”이라고 전했다.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체방크의 헨리크 아스락센 유럽 기업인수합병 담당 공동대표는 “신흥시장 은행들은 서브프라임 위기에서 벗어나 있기 때문에 돈을 빌려줄 여력이 있다”며 “이들 은행은 자국 시장의 기업 가치를 더 잘 알고 있다는 이점도 있다”고 설명했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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