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문화유산을찾아서>13.금동여래입상 日요시노 光明寺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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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절들이 하늘의 별처럼 널려있고 탑들은 기러기가 날아가는 것처럼줄이어 있다』(寺寺星張 塔塔雁行).
『삼국유사』의 저자 일연스님은 이렇게 운치있게 통일신라시대 찬란한 불교문화가 꽃피었던 경주의 모습을 묘사했었다.신라에 불교가 전래된 것은 3국중 가장 늦었지만 불교의 발전과 융성은 어느 나라에도 뒤지지 않았다.
석굴암은 그처럼 번성했던 신라불교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불교문화재다.석굴암 안에 모셔진 여러 佛.보살(菩薩).신중(神衆)들의 아름답고 당당한 모습,특히 본존불의 원만.무애한 모습은 보는 사람에게 깊은 마음의 위안과 평온을 가져다준다 .종교와 예술이 한데 어울린 걸작중의 걸작이라 할 만하다.아름다우면서 장엄한 석굴암 본존불이 돌로 빚은 이 시대의 걸작이라면 금동불로서 이 시대를 상징하는 작품은 일본에 있다.
일본 요시노(吉野)지방의 작은절 광명사(光明寺)에 소장된 금동여래입상(金銅如來立像)이다.24.4㎝의 자그마한 이 불상은 이제 막 개금불사(改金佛事)를 마친듯 1천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넘어 금색찬연한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당당한 균형감과 머리끝에서부터 발끝까지 한결같은 솜씨로 이뤄진 도금은 여전히 생생한 광채를 내뿜고 있다.눈을 내리감고 조용하게 입을 다문 여래의 존용(尊容)은 마치 모든 시간이 멈춘듯 정일하고 엄정하다.양쪽 어깨를 걸쳐 자연스럽게 드리워진 대의(大衣)는 약간 오른쪽으로 여며졌으나 다리부분에서는 물결이 밀려나듯 파상문이 대칭을 이루고 있다.옷무늬는 날카로울 정도로선이 분명해 어떤 시대적 자신감마저 느끼게 한다.
대의의 오른쪽 안자락 처리가 약간 덜된듯 하지만 전체적으로는고전적 단정함이 균형을 이뤄 실로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을보인다. 일본에서 이 불상의 존재가 처음 알려진 것은 지난 88년이다.이 불상의 아름다움을 처음 세상에 알린 주인공은 광명사 주지인 무라오카 구(村岡 空)스님.광명사는 나라(奈良)남쪽요시노 구마노(吉野熊野)국립공원에 못미친 한적한 시골의 산사로나라에서 2시간쯤 기차를 타고가 다시 20여㎞를 더 들어가야 하는 산속에 있다.산등성이의 감밭에 둘러싸인 광명사는 신자수도15집에 불과할 정도인 말 그대로 산속의 작은 절이다.
불교학자이자 시인으로 잘 알려진 무라오카스님은 20여년전 정토종계열의 이 절에 부임하면서 한 신자가 가져온 불상 하나에 주목했다.
일본불교는 명치시대들어 신도(神道)의 의도적 강화와는 반대로심한 탄압을 받아 폐불훼석(廢佛毁釋)이란 큰 수난을 당했다.이때 광명사도 중이 떠나버려 절의 불상과 집기는 수십년간 신자들이 나눠 보관하고 있었다.이 불상은 무라오카스님 이 새로 부임하면서 신자집에서 절로 되돌아온 여러 물건중 하나였다.
『처음 왔을 때 단가(壇家.일본의 불교신자)로부터 영험있는 불상이란 말을 들었어요.그때만 해도 불상에 큰 관심이 없었지만첫 인상이 무척 화려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한동안 잊고 지내온 무라오카스님은 87년 여름 자신이 갖고 있는 책속에서 이 금동불과 비슷한 불상사진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시카고미술관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금동불과 이 불상은 여러점에서 아주 흡사해 무라오카스님을 들뜨게 했다.
라국립박물관에서 일본의 불상연구 전문가들에게 이 불상을 정식으로 보인 것은 88년3월18일.그후 한차례 감정을 더 거쳐 관계전문가들로부터 이 불상이 통일신라시대의 명품이란 사실을 정식 확인받았다.
『걸작 판정이 나자 신문사.방송사의 헬리콥터와 중계차가 몰려드는등 이 마을에 큰 난리가 났었습니다.마을사람들도 옛날 자신들이 1년씩 돌아가면서 모셔왔던 불상이 정말 대단한 물건이라는걸 비로소 알았지요.』 무라오카스님은 그후 이 지방의 향토사학자들과 함께 이 불상이 헤이안시대 일본에 귀화한 신라계 후손들이 가져온 것이라는 점을 밝히는 논문을 써 발표하기도 했다.스님에 따르면 이 불상은 광명사 뒤편 은봉산(銀峯山)의 백광원 신궁사(白 光院 神宮寺)에 모셔져 있던 본존불로 이 절이 화재로 없어져 버리고 어느 시기엔가 말사(末寺)인 광명사에 전해졌다는 것.국립중앙박물관 강우방(姜友邦)학예실장은 『금박이 이렇게 아름답게 남아있는 불상은 거의 없다』며『신라의 최전성기인 8세기를 대표하는 명품으로 신라인들의 경건한 佛신앙이 함께 담긴 작품』이라고 평했다.
일본 매스컴의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다시 탄생한 이 불상은 현재 도난등의 우려 때문에 나라국립박물관에 위탁보관중이다.
▧ 다음회는 청자진사 연화문 표주박형 주전자편입니다.
글 :尹哲圭기자 사진:崔正東기자.奈良국립박물관제공 자문위원:鄭良謨 국립중앙박물관 관장 安輝濬 서울대박물관 관장 洪潤植 동국대박물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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