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대 1 … 관치금융 부활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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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11일 열린 금융위원회 관련 공청회에서 문제가 많다고 거듭 얘기했지만 하나도 반영이 안 됐다.”(서울대 법학과 이원우 교수)

“이런 식의 제도는 오래가지 못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법 개정 논의가 시작될 것이다.”(한나라당 유승민 의원)

금융 정책·감독에 관한 최고 의결기구인 금융위원회의 구성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24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 따르면 금융감독위원회가 금융위로 문패를 바꿔 달면서 현재 3명인 민간위원이 1명으로 줄어든다. 금감위 고위 관계자는 “당초 개정안에는 민간위원을 3명 그대로 유지하기로 돼 있었는데 여야 합의과정에서 바뀌었다”고 설명했다.

8대 1의 숫자만 봐도 민간의 시각이나 의견이 반영될 여지가 크게 제한된 것이다. 전원회의 합의기구라는 점에서 금융위와 비슷한 공정거래위원회도 9명 중 민간위원이 4명이나 된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의 연구원은 “1998년 4월 금감위가 발족하면서 3명의 민간위원을 둔 것은 정부에 대한 견제를 통해 관치금융의 폐해를 줄이고자 했던 것”이라며 “그러나 이번 법 개정으로 금융위는 금융 관련 정부 부처가 모이는 금융정책협의회가 돼 버렸다”고 말했다.

예컨대 금감원장이 당연직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당초 빠졌던 예금보험공사 사장도 당연직 위원이 됐다. 특히 금감원장이 금융위원이 된 것은 마치 검사가 배심원을 겸임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또 예보는 재경부 소속에서 금융위 소속으로 바뀌기 때문에 산하 기관장이 금융위원이 된다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1명이었던 금융위원회 상임위원을 2명으로 늘린 것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서울 소재 대학의 경제학과 교수는 “상임위원을 늘린 이유가 전문성 강화라고 하지만 전문성과 상임위원의 숫자는 별개”라며 “공무원 자리 늘리기에 급급했다는 인상”이라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차관의 경우 금융정책 업무가 금융위로 이관되기 때문에, 한국은행 부총재는 금융위 의결 사항에 대해 재논의 요구권이 있기 때문에 굳이 금융위 당연직 위원이 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금융 감독의 공백도 우려된다. 21일자로 이미 2명의 금감위 민간위원과 1명의 증권선물위원회 민간위원의 임기가 만료됐다. 그러나 금감위는 금융위 출범을 이유로 신규 선임을 미루고 있다. 이번주 금융위 관련 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더라도 금융위 구성까지는 1~2주가 걸린다. 금융사 부실화 등 급박한 문제가 생겼을 경우 대처가 쉽지 않은 것이다.

금감위 관계자는 “남은 7명의 금감위원으로도 회의는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감위는 민간위원의 임기 만료에 따라 22일로 예정된 회의를 하루 앞당겨 열었다.

한편 금융위가 기획재정부와 금융통화위원회 등에 긴급 협조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은 백지화됐다. 이 같은 권한이 주어지면 금융위가 다른 기관에 대한 우월적 지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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