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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 퇴임 하루 앞둔 봉하마을은

중앙선데이

입력

중앙SUNDAY
노무현 대통령의 귀향을 앞둔 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 10여 명의 인부가 마을 주차장 안쪽 광장에 세워진 임시무대에 조명과 방송장비를 설치하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공사 현장의 관계자는 “노 대통령이 25일 오후 3시30분쯤 행사장 입구에 도착해 차에서 내려 관중석에 잠깐 앉은 다음 무대에 올라와 인사말을 하고 사저로 걸어 들어가시는 걸로 돼 있다. 노 대통령 내외의 행사장 도착에 맞춰 분위기를 띄우기 위해 봉화산에서 연기를 올린다”고 말했다. 그는 혹시라도 차질이 생길까봐 동선을 몇 차례나 꼼꼼히 확인했다. 48가구 121명이 사는 봉하마을은 동네 전체가 노 대통령을 맞을 채비로 분주하다.

김해시로부터 19일 사용승인을 받은 지하 1층, 지상 1층 연면적 1277㎡(387평)의 노 대통령 사저는 조경 공사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이다. 사저 앞쪽으로 돌담을 쌓고 그 앞에 일정한 간격으로 보안등을 설치하는 작업이다. 공사 기간 설치됐던 가림막이 모두 철거돼 22일 사저 전체의 모습이 처음으로 드러났다. 당초 대지 3991㎡(1209평)에 연면적 993㎡(300평)로 공사를 시작했으나 설계변경 과정을 거쳐 연면적이 30%쯤 늘어났다. 공사는 지난해 1월 15일 시작돼 1년1개월 걸렸다.

사저는 황토 빛 외벽에 수십 개의 유리창이 있는 ‘ㄷ’ 자 구조로 지어졌다. 밖에서는 세 채의 독립건물이 이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한 동이다. 사저 안을 둘러본 인사는 “거실에 가보니 봉화산 정상의 커다란 바위가 한눈에 들어와 마치 산속에 앉아 있는 듯 전망이 좋았다”고 말했다. 사저 정문 주변에는 왕벚나무과 산벚나무 20여 그루가 심어졌다. 공사 기간 동안 임시로 심어진 노송들은 사저를 빙 둘러싸도록 옮겨졌다.

경찰, 사저 경비 강화

본산공단에서 마을에 이르는 진입로 1.4㎞ 구간에는 현수막 100여 개가 내걸렸다. 그중에서 개성고(옛 부산상고) 53회 동기회가 내건 ‘친구야 고생 마이(많이) 했제. 우리는 너를 사랑한다’는 현수막이 눈길을 끌었다. 노 대통령의 형 건평씨 집 앞에는 ‘노짱님 언제나 방 비워 놓겠습니다’ ‘내 인생의 가장 큰 성공은 노무현을 만나 노사모가 된 것입니다’ 등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원들이 내건 현수막이 펄럭였다. ‘노 대통령 귀향 환영행사추진위원회(위원장 선진규)와 주민들은 동네 위에 대형 애드벌룬 4개를 띄워 환영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마을 주변에는 노사모를 상징하는 노란색 풍선 수백 개를 매달았다. 행사 당일 환영행사를 취재하러 오는 기자들을 위해 마을회관에 기사 송고 부스도 마련했다. 김해시 소속 인부 20여 명은 마을 진입로 양쪽에 있는 잡목을 베어내고 쓰레기를 줍는 등 대청소를 했다. 살수차로 마을 입구의 안내 표지석도 깨끗하게 씻었다.

노 대통령 퇴임이 가까워지면서 경찰의 경비와 청와대 경호원들의 경호가 강화됐다. 경호원들은 특별한 용무 없이 사저 가까이 접근하는 사람을 바로 제지하며 사진 촬영도 엄격히 통제한다. 경남지방경찰청은 노 대통령 사저의 외곽경비를 위해 1개 소대(30여 명)의 전경대원을 배치할 예정이다. 마을 입구의 밭 1551㎡를 임대해 3억2000만원을 들여 전경대원들의 숙소 공사를 시작했다. 숙소는 6월께 준공될 예정이다.

25일 서울역과 밀양역에서 행사

행사 추진위는 귀향 행사에 6000여 명의 지지자·시민이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행사에 대비해 마을 앞 논에 천막 40동과 의자 3000여 개를 준비했으며 참석자들에게 국밥과 과일을 대접하기로 했다. 추진위는 봉하마을의 차량통행을 제한하는 대신 진영공설운동장과 진영단감농협 등 세 곳을 임시주차장으로 사용하고 임시주차장∼봉하마을 간 셔틀버스를 운행할 예정이다.

노 대통령은 25일 이명박 새 대통령의 취임식에 참석한 뒤 곧바로 서울역에서 KTX 열차를 타고 봉하마을로 내려온다. 귀향길에는 참여정부 장·차관과 청와대 전ㆍ현직 비서관, 지인 등 160여 명이 동행할 예정이다. 서울역 환송식에는 재경 부산상고 동문회와 노사모 회원, 중국 동포 교회 신도 등이 참석한다. 밀양역에서는 밀양시 주최 환영식이 열린다.

귀향 본행사는 오후 3시30분 시작된다. 식전행사로 김해 시립가야금연주단의 국악 공연, 진우복지관의 사물놀이 공연 등이 펼쳐진다. 본행사는 국민의례, 동영상 상영(5분)에 이어 선진규 추진위원장의 환영사, 노 대통령의 답사로 이어질 예정이다.

당초 추진위는 행사 참석자를 1만여 명으로 잡고 여기에 들어갈 비용 1억3000여만원을 참여 단체가 나눠 부담하기로 했으나 규모를 줄였다. 선진규 위원장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처음으로 귀향하는 노 대통령을 위해 행사를 의욕적으로 준비했으나 숭례문 화재 후 간소하게 치르기로 방향을 바꿨다”고 말했다.

측근 거주용 빌라 4월에 준공

진영읍사무소에 확인한 결과 최근 봉하마을에 새로 전입신고를 한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 부부도 아직 전입신고를 하지 않았다. 읍사무소 관계자는 “귀향하시고 주변을 정리한 뒤 전입신고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귀향 이후 활동 방향을 놓고 참모들 사이에서는 재단과 연구소 설립, 출판, 환경운동 등이 다양하게 논의되고 있으나 아직 결론이 내려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노 대통령은 25일 개인 홈페이지를 ‘사람 사는 세상’(knowhow.or.kr)이란 이름으로 재개통해 국민에게 자신의 근황을 알릴 예정이다. 노 대통령은 국회의원이던 1999년 8월15일 이 홈페이지를 만들어 운영하다 대통령 취임 직전 폐쇄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홈페이지에는 노 대통령이 걸어온 길과 주요 발언, 각종 문서·사진·동영상 등의 자료가 올라가며 앞으로의 일정과 소식도 충실히 알려나갈 것”이라고 소개했다.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김경수 연설기획비서관, 문용욱 제1부속실장, 박은하 행정관도 봉하마을로 내려온다. 김 비서관은 대변인 역할을 맡는다. 문재인 대통령 비서실장, 이호철 민정수석, 윤태영 전 대변인, 이병완 전 비서실장, 천호선 대변인도 봉하마을을 오가며 ‘민간인 노무현’을 도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봉하마을에 거주할 측근은 이들이 입주할 빌라가 준공되는 4월에야 최종 확정될 것으로 보인다. 마을 입구에 자리 잡은 빌라는 지하 1층, 지상 2층 연면적 2046㎡(618평)로 14가구가 입주한다. 시공사인 ㈜삼정 관계자는 “입주할 사람은 거의 정해진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휴일에 관광객 3000명 몰려

노 대통령이 지난해 1월 봉하마을에 사저를 착공한 뒤 의혹과 논란이 제기됐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너른 사저에다 지인들이 주변 땅을 사들여 ‘봉하타운’이란 말까지 나왔다. 산림청·환경부·김해시가 봉하마을 주변의 산과 하천을 개발하는 데 너무 많은 예산을 배정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김해시는 지난 2년간 기초기초자치단체 가운데 가장 많은 특별교부세를 받았다. 기획예산처가 작성해 대통령직 인수위에 제출한 ‘봉하마을 지원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봉하마을 관광지 개발(75억원), 봉화산 웰빙숲 개발(30억원), 화포천 생태 체험시설 조성(60억원), 진영시민문화센터 건설(255억원), 진영공설운동장 개보수(40억원) 등에 지방비 284억원을 포함해 모두 495억원이 책정돼 있다.

개발 계획에 따르면 봉하마을 한복판에는 정자ㆍ생태연못이 있는 마을마당이 들어선다. 관광객을 위한 55대 규모의 주차장(2900㎡)은 잔디블록을 사용해 ‘생태주차장’으로 꾸민다. 마을 안길에는 살구ㆍ자두나무 등 유실수와 느티나무ㆍ팥배나무를 심는다. 마을마당은 수양버들 아래 붓꽃ㆍ부처꽃이 피고, 생태연못에는 수생식물이 자라게 된다.

봉하마을에 많은 예산이 들어간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문화관광해설사 김민정씨는 “관광객이 한 달 전의 2배 수준으로 늘어 휴일에는 2000∼3000명이, 평일에는 600여 명이 찾는다”고 말했다. 한 관광객은 “마을에 금칠을 하는가 싶어 확인하려고 왔다”고 말했다.

관광객 김모(50)씨는 “사저와 마을회관, 측근들이 살 빌라가 한꺼번에 지어지면서 대통령을 배출한 소박한 농촌마을의 원형을 잃었다. 새 건물들이 대통령 생가와 원래 마을을 상대적으로 너무 왜소하게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마을 주민들은 억울하다는 반응이다. 봉하마을 주변을 가꾸는 데 많은 돈이 투
입된다는 이야기가 “너무 과장됐다”는 불만이다. 봉하마을과 4㎞쯤 떨어진 진영읍내 공설운동장과 시민문화센터를 보수하거나 짓는 데 들어가는 예산까지 모두 봉하마을을 위한 것으로 잘못 알려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퇴임한 뒤 환경운동과 숲가꾸기 활동을 하고 싶다”고 자주 말했다. 그리고 지난해 고향을 여섯 차례나 찾았다. 관련 기관이 예산을 집중편성했다는 의혹이 나오는 근거다.

김상진 기자 daed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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