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러져가는 전통공예를 생각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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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호 09면

한국 전통공예품은 여러 나라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며 많은 주목과 찬사를 받고 있습니다. 나라 안에서뿐만 아니라 밖에서까지 우리 공예품이 우러름을 받는다는 것은 우수성의 방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와 같이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공예품의 생산자는 소위 ‘쟁이’라고 불리는 장인들입니다.

-‘문화재 지킴이’ 故 예용해 선생의 미공개 육성

아시겠지만 장인들은 조선시대에 천민에 해당됐습니다. 어떻게 해서 그렇게 천한 사람들이 아름다움의 왕국에서 왕자처럼 군림할 수 있는 것을 이룩할 수 있었는지는 생각해 봐야 할 대목입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전통공예에 관심을 두고 여러 장인을 만나봤습니다. 그분들은 예외 없이 정상적인 학교교육도 못 받고 경제적으로 대단히 어려운 역경 속에서도 꾸준히 평생을 걸고 우리 공예를 위해 헌신해온 분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분들은 비록 현세에서 여건들이 처참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전통기능에 대한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어요. 삶이 외롭고 힘들지언정 자기가 전승했던 직업에 대한 그분들의 철저한 장인의식, 그리고 명인 기질에 저절로 숙연해졌습니다. 요즘 미술품을 경매하는 국제적인 경매장에서는 우리나라 공예품들이 천정부지로 그 값이 치솟고 있는데, 그렇게 되는 이유는 이와 같이 투철한 장인정신과 평생을 다해온 그런 인간적인 수업 내지 숙련, 또는 사색, 체험의 끊임없는 과정 속에서 말미암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그런데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은 그렇게까지 평가받고 있는 우리의 전승공예가 지금 바야흐로 인멸의 위기에 다다라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수요가 없어지고 있으니까요. 또 한 가지 중대한 요인이 바로 우리의 잘못된 가치관입니다.

흔히 멋을 좀 안다는 이들이 핸드백이나 스카프·구두를 살 때 흔히 명품이라 불리는 서구 제품을 선호합니다. 그것들을 구하기 위해 막대한 외화가 낭비되고 있어요. 한데 만약 우리가 가죽 다루는 솜씨가 귀신 같았다던 갖바치에 대해 지녔던 그런 그릇된 가치관의 노예가 되지 않았던들 지금쯤 파리나 로마나 뉴욕의 멋쟁이들이 가죽으로 된 백이나 신발을 사러 서울로 구름떼처럼 몰려들었을 겁니다.

이웃나라 일본에서는 우리 전통공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평가하고 있을까요. 임진왜란 때 왜군 장군이 우리나라에 와 죽을 고생을 하며 전공을 세우고 가면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상으로 주는 것이 조선의 막사발 하나였어요. 그 정도로 우리의 막사발이 일본에서는 비싸게 행세를 했어요. 또 옛날 얘기입니다만, 1920년대 일본에서 ‘민예운동’이라는 것이 일어났어요. 지금은 아주 세계적인 것이 되어 있지요.

그 민예운동의 계기가 되었던 것이 우리나라 도자기란 사실을 아십니까. 서울에서 소학교 교사를 하며 조선 도자기에 심취한 아사카와 노리다카가 민예운동을 주도한 야나기 무네요시에게 청화백자 모깎기 항아리를 하나 선물로 준 것이 동기가 된 겁니다. 몇 년 전 돌아가셨습니다만 무나가다 시코라는 판화가가 있어요.

세계적인 작가지요. 그 무나가다 시코가 영향을 받은 것은 조선시대 목각이었어요. 우리는 아무것도 못하고 있을 때 이웃나라 사람들이 우리나라의 장점을 다 섭취해 그것을 자기들 나름대로 다시 가꾸어 세계화했는데 정작 본고장인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세계적인 작가가 나오기는커녕 전통공예가 날로 쇠퇴일로에 있고 또 미구에는 이게 모두 전통의 단절을 가져올 정도로 위기에 있어요.

요는 전통의 계승이라는 것이 ‘그대로 지키는 것이냐’ 하는 점을 생각해 봐야 될 것 같아요. 흐르는 물이 고여 있으면 썩듯이 전통도 그런 것이 아닐까 하고 평소 생각해 봤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말이죠.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역시 이것을 재해석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는 대응의 힘을 갖추는 것이 올바른 전통의 계승이 아닌가 합니다.

그런데 거기에는 한 가지 전제해야 할 사항이 있습니다. 문화의 속성이라는 것을 보면 전통문화에 기반을 두지 않고 외래문화를 일방적으로 수용하면 전통문화는 말살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전통문화의 기반을 확고하게 다질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전통의 단단한 기반 위에서 재해석하고 재연합해 재창조해야 하는데 뭘 재창조해야 되느냐? 여기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 됩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전통공예에서도 우리의 순수한 전통이, 전통의 기능과 예능이 뭐라는 것을 정확하게 익히는 노력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조형을 아름답게 한다’ 이런 것은 기능 이전에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쓰는 사람들이 두고두고 요긴하게 쓰고, 감사하게 쓰고, 즐겁게 쓰도록 남을 생각한 그 사랑의 마음, 정직한 마음, 이타(利他)하는 마음, 이런 것들이 우리 전통공예를 세계에서 유례없는 아름다움으로 완성시켰던 것입니다. 그 마음을 오늘에 되새기자고 말씀드리는 제 충정만이라도 좀 살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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