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他界한名唱 金素姬여사-宋萬甲씨에 동편제 계보 이어받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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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23면

『너희들에게 고생만 시켜서 미안하다….』 평생 전통국악의 맥을 잇기 위해 헌신하며 굴곡진 삶을 살아야했던 예인이 임종의 자리에서 남은 자식들에게 남긴 말은 이처럼 평범한 모정의 한마디였다. 17일밤 타계한 인간문화재 만정(晩汀)김소희(金素姬)여사는 국창(國唱).명창(名唱).절창(絶唱)이라는 수식어로도 허전함이 남는 판소리의 대가였다.
1917년 전북 고창에서 태어난 金씨는 12세때 명창 이화중선(李和中仙)의 노래를 듣고 감명받아 소리에 입문했다.송만갑(宋萬甲).정정렬(丁貞烈)선생에게『심청가』『흥보가』를 배워 동편제 판소리 계보를 이어받았다.일찍이 金씨의 재능을 알아본 송만갑은『요런 애물은 천에 하나 나오기 힘들제』하며 수업료를 일절받지 않았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판소리 외에도 김종기(金鍾基).강태홍(姜太弘)에게 가야금을,정성린(鄭成麟)에게 살풀이춤을 사사했으며 서예로도 국전에 3회입선한 경력이 있다.19세의 나이로 일본 빅터 오케이 레코드사전속가수가 되어『춘향전』을 취입했는데 당시 전 속금은 월 80원.쌀 50가마 값의 파격적인 금액이었다.金여사는 54년 민속악의 본산 국악예고 전신인 민속예술학원의 초대원장.이사장,국립국극단 부단장,한국국악협회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71년부터 창악전수소를 설립,본격적인 후학 양성에 들어갔다.제자로는 성창순(成昌順).신영희(申英姬).오정숙(吳貞淑).안숙선(安淑仙).강정숙(姜貞淑)등 모두 내로라 하는 국악계의 중진들.72년 美 카네기홀에서의 판소리 독창회를 비롯,뮌헨 올림픽.서울 올림픽 문화축전에 참가해 판소리 를 세계무대에 소개하는데 앞장서왔다.
각종 국악상을 여러차례 수상한 그녀는 73년 국민훈장 동백장,82년 제1회 한국국악대상,91년 동리(桐里)대상,94년 방일영 국악상을 받았다.음반으로는『심청가』와『춘향가』완창 앨범등이 있다.유족인 2남1녀중 맏딸 박윤초(朴倫初.5 1)씨는 판소리.춤.연기등 폭넓은 재능으로 어머니의 뒤를 잇고 있다.
〈李長職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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