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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트로 퇴진 이후 쿠바는 특파원 2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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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형제 차베스여, 당신의 나라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20일(현지시간) 쿠바의 수도 아바나 중심가에 자리 잡은 보건부 현관, 활짝 웃는 우고 차베스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사진 위에 극진한 환영사가 적혀 있다. 쿠바 정부가 차베스를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지 단박에 알 수 있는 장면이다. 공수부대 출신에 우악스러운 분위기가 트레이드 마크인 차베스가 중남미 최고의 인텔리 국가라 자부하는 쿠바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비결은 뭘까. 바로 쿠바의 취약점인 경제난을 파고들었기 때문이다.

다음해에 혁명 50주년을 맞는 쿠바는 속속들이 가난에 찌들어 있다. 아바나 거리를 조금만 걷다 보면 가난의 냄새를 금세 맡을 수 있다. 시내 동쪽 유서 깊은 올드 아바나 지역엔 고색창연한 스페인풍 대저택들이 허옇게 칠이 벗겨진 채 흉물스럽게 서 있다. “집을 수리할 건축 자재가 없기 때문”이라고 운전사가 귀띔한다. 생전에 피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출퇴근했다는 5번가엔 50년도 넘은 거대한 미제 시보레 차가 매캐한 매연을 내뿜으며 달리고 있다.

쿠바 경제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가난의 실체가 더 확연히 드러난다. 최근 쿠바인들을 짓누르는 ‘이중화폐 제도’가 대표적이다. 한 나라에 2개의 공식 통화가 존재하는 희한한 제도다. 쿠바 정부가 사용하는 공식 화폐 단위는 페소다. 그런데 외국 돈과 맞교환이 가능한 태환 페소와 맞교환이 안 되는 불태환 페소가 공존한다. 태환 페소는 외국인이, 불태환 페소는 내국인이 각각 사용한다. 태환 대 불태환 페소의 환율은 24:1. 그러다 보니 지하 경제가 번성하는 등 갖가지 문제점이 발생한다.

일반적인 쿠바인의 월급 수준은 불태환 화폐로 약 300페소. 미화 12달러(약 1만1380원)에 불과하다. 컬러TV 한 대가 400~500달러란 점을 고려하면 턱없이 적은 금액이다. 월급과 별도로 배급품을 받지만 질은 고사하고 양마저 충분하지 않다. 안드레스 메가(회사원)는 “거의 모든 쿠바인이 해외 친척들이 송금해 주는 생활비나 지하 경제에서 얻는 불법 수익으로 먹고산다”고 털어놨다.

과거 소련 등의 경제 원조로 버텨 오던 쿠바는 1990년대 공산권의 몰락으로 젖줄이 끊기자 이처럼 비참한 신세로 전락했다. 이 틈을 비집고 구세주처럼 등장한 게 차베스다. 그는 카스트로의 신봉자를 자처하며 헐값에 원유를 댔다. 하루 9만2000배럴에 달하는 베네수엘라산 석유는 쿠바 경제의 버팀목이 됐다.

립서비스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의 취임식에 가서도 시종 카스트로에 대한 찬사만 늘어놨다. 그의 정성에 카스트로도 감복한 듯 화답했다. 2004년 쿠바 의료진과 교사 수천 명을 베네수엘라로 파견, 병자를 고치고 문맹자들에게 글자를 가르치게 했다. 이 같은 원유 대 의료·교육의 교환은 양국 관계를 긴밀하게 만들었다. 2001년 4억 달러였던 양국 간 교역량은 지난해 26억 달러로 6배 이상으로 늘었다. 두 나라는 올해 중 14억 달러 규모의 공동사업 76개를 추진키로 했다.

그러나 카스트로의 퇴장은 양국 관계를 어떤 식으로든 변화시키는 게 불가피하다. 경제난에 허덕이는 쿠바인들의 걱정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남정호 특파원 (아바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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