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V시대명음반>차이코프스키 "비창교향곡"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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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6면

『비창교향곡』을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은 차이코프스키가 인간적인 결점을 많이 지닌 사람이 아니었던가 하는 점이다.
사실 이 교향곡에 나타난 억제할 길 없는 비통한 심정도 그가감정을 절제할 수 있는 좀더 깊이있는 사고나 고매한 인품의 소유자였다면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이 점에서 그의 음악은 위대한 바흐나 베토벤,브람스의 음악과다르다.또 비슷한 인간적인 허물을 지녔던 모차르트와도 다르다.
모차르트는 통속적인 주제를 다룰 때조차 고귀함에 휩싸여 있음을 느끼게 되는 반면,차이코프스키는 수많은 인간적인 감정의 기복 위에 놓여 있다.
한편 이런 인간적인 격앙된 심정들이 이 곡의 비장한 아름다움을 더욱 풍요롭게 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타계한 므라빈스키가 레닌그라드 필하모닉을 지휘하여 60년대에 녹음한 DG판이 명반으로 손꼽히지만 스베틀라노프의 연주도 이에 못지않은 명연이다.
므라빈스키의 연주가 백열(白熱)같은 정열과 예리하고 치밀한 감정으로 이 곡의 비애를 풀어내고 있다면 이 연주는 보다 묵묵한 비장함을 지니고 있다.
규모가 크고 농밀한 감정의 기복에 휩싸여 있기는 마찬가지나 므라빈스키의 경우처럼 격앙된 감정과 한없는 서정을 수시로 교차시키며 나아가기보다 좀더 과묵한 흐름으로 이곡의 깊은 슬픔 속으로 함몰해 들어가고 있다.
또 소비에트 국립교향악단의 연주력도 나무랄데 없이 훌륭해 그들이 만들어내는 거대한 규모로 작열하는 음향속으로 깊숙이 젖어들 수 있다.
특히 1악장 서주부에 흐르는 바순의 우울한 음색이나 2악장의소박하고 유려한 흐름,3악장의 장대한 음량과 절도있는 행보,피날레에서의 어두운 정열등이 압권이다.
〈멜로디아〉 <양현호 레코드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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