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준수영화산책>파리넬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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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아름다운 목소리를 위해 변성기 이전에 거세(去勢)당한 남자가수들-.그들이 바로 17~18세기 유럽 교회합창단에서 활약했던「카스트라토」들이다.그들은 한때 오페라에도 출연하는등 전성기를누렸지만 거세가 비인도적이라는 여론 때문에 1 903년 교황의금지칙령이후 자취를 감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파리넬리」는 실존했던 카스트라토로 알려져 있는데 영화에선 최고의 미남에다 최상의 미성(美聲)가수로 그려져 있다.
종교음악에 이런 내시(內侍)가수들이 있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다.그들의 존재는 대중의 흥미를 끄는데 최고의 호재였을텐데 그동안 카스트라토를 소재로 한 이렇다 할 흥행작이 없었던 것은 이상한 일이다.
별난 주인공에 어울리는 기발한 성(性)묘사가 호사가들의 흥미를 잔뜩 부추긴다.여성들에게 인기높은 성불구의 주인공과 작곡가인 친형이 성행위의 역할분담을 한다는 것이다.아우와 형이 임무교대를 해가며 여성에게 이중의 환락을 선사한다는 이야기는 도덕론자들의 분노를 일으킬만 한데 아직 뒷말이 없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도 성문제에 꽤나 관대해진 모양이다.그러나 이 영화가 그런 말초적이고 자극적인 스토리만 풍성한 오락물로 선전되는 것은 유감이다.거세당한 가수가 갖는 인 간적 갈등을 그린 사실성이나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진 카스트라토의 노래를 듣는 감흥은 사람들의 입에 별로 오르내리지 않고 있다.영화의 작품성이나 음악적 수준이 관심을 끌만한데도「음악적 오르가슴」따위로 선전돼 영화의 무게를 크게 떨어뜨 리고 있다.
파리넬리의 노래를 들을 때면 비명을 지르고 기절소동을 벌이는여인들의 모습은 18세기의 「오빠부대」를 보는 것같아 흥미롭다.그러나 문제의 주인공이 형의 노래도구가 되기 위해 본인도 모르게 거세됐다는 내용에선 서양판 『서편제』주인공 을 보는 것같은 찡함이 있다.
이 영화 역시 『서편제』처럼 잔인한 예술적 이기심에 지나치게관대하다.혈육에 대한 치명적 가해행위를 예술가 특유의 몰인정 정도로 돌리고 가해자의 인간적 갈등에 초점을 맞춘 것은 저으기불만그럽다.그러나 그런 형이 있었기에 동생의 명성도 있었을테니소재의 사냥은 일단 잘한 영화라 하겠다.. 편집담당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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