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生작가들 문단 속속등장-한강.송경아.김연수.김경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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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3면

70년대生.
유신독재의 서슬 퍼런 시절에 말을 배우며 자란 세대.20세기한국 현대사의 마지막 비극으로 기록될 광주민중항쟁을 일러야 국민학교 저학년때 TV뉴스로 봤을 세대.이미 문민정부가 들어선 90년대에 대학에 들어가서는 80년대 운동권의 부정적 잔재를 더 깊이 봤을 세대.그리고 때마침 불어닥친 개방바람을 타고 들어온 레게.재즈같은 세계공통의 대중문화에 친숙하고 정보화 물결의 실질적인 1세대로 어느 세대보다 컴퓨터 사용에 경쟁력이 있는 세대.
이들 세대의 감수성을 대변하는 70년대생 작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송경아.김연수.한강.김경욱씨가 그 대표주자격.이들은모두 등단 2년 이하로 독자적인 개성을 선보이고 있으면서도 앞세대와 변별되는 공통점을 갖고 있어 관심을 끈다 .
이들의 공통점은 일제식민지,6.25사변,4.19혁명,5.18민중항쟁과 같이 세대별로 공유하는 역사적 사건의 체험이 부족해문화상품을 통한 간접체험을 즐겨 소설의 질료로 삼는다는 것.때문에 이들은 유난히 음악.그림.영화.소설과 같은 작품에 대한 이야기가 많고 경우에 따라서는 인용된 작품에 대한 이미지의 공유가 작품을 이해하는 관건이 되기까지 한다.
93년 중편 『아웃사이더』로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한김경욱(24.서울대 영문과4)씨는 『택시드라이버』『시네마천국』과 같은 제목이 암시하듯 영화의 이미지를 소설로 꾸며내기를 즐긴다.묘사를 할때도 『나는 문득 영화 「아라비아 의 로렌스」를떠올렸다.작열하는 태양과 가도 가도 끝이 없는…』같이 영화를 감상한 기억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김씨는 그 이유를 『직접 체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쩔수 없는방편이기도 하지만 또래 독자들의 경우도 공유하는 체험이 없기 때문에 문화상품의 이미지를 통한 중간매개를 거쳐야 쉽게 느낌을전달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라고 설명한다.
지난해 장편 『가면을 가리키며 걷기』로 작가세계 신인상을 받은 김연수(25.성균관대 영문과 4)씨는 간접체험의 세계를 더밀고 나가 그것이 현실이 아닌가 하는 물음을 던진다.김씨는 이작품에서 박정희가 죽은 뒤 주변 인물들이 그와 흡사한 인물을 발탁해서 권력을 유지하려는 상황을 설정하고 가짜 박정희가 진짜처럼 돼가는 과정을 그린다.스토리 자체가 연극 『독재자 학교』에서 영향받은 듯한 이 작품을 통해 김씨는 진짜와 가짜,현실과환상,기호와 실재가 구별되지 않 는 모호한 상황 그것이 현실이아닌가 하고 묻고 있는 것이다.
김씨는 최근작인 『겨우 존재하는 것들』(파피루스 4월호)에서『위장병의 약이라는 것은 심리적인 위안일 뿐이다.플라시보 효과라는 것이지.내 삶을 둘러싼 모든 것이 플라시보였고 환각이었지.내가 사랑했던 음악도,여자도,열심히 다녔던 회 사도 모든 것이 환각일 따름이었지.
나는 환각을 쫓아왔지,여지껏』이라고 적고 있다.
지난해 겨울 상상에 『청소년 가출협회』를 발표하며 등단한 송경아(24.연세대 전산과졸)씨는 김연수가 던지고 있는 질문에 단호하게 『플라시보도 현실이다』고 말하는 작가다.
송씨는 『어차피 사람은 자신의 삶의 영역 밖에 체험하지 못하고 상상력이 존재하는 한 인간은 이미지나 기호와 같은 상상적인공간에 둘러싸여 살수 밖에 없지 않느냐』고 반문한다.
소설가 한승원씨의 딸로 93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한강(25.연세대 국문과졸)씨는 다른 70년대생 작가들에 비해 비교적 전통적인 소설 문법을 잘 이어받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최근작인 『저녁빛』(문학과 사회 봄호)은 촉망받던 미술학도가출생의 어두운 비밀을 알고난 후 망가져가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근원적인 그리움과 아름다움에 대한 집착을 겹그림으로 그려내고 있다.「저녁빛」은 소멸해 가는 것에 대한 안타 까움이 아름다움에 대한 열망으로 덧칠된 빛깔이다.
한씨는 이 작품에서 박수근의 그림 『나무와 여인』의 이미지를주인공 재헌의 심경 묘사에 끌어들이기도 하는등 부분적으로 다른70년대 작가들과 비슷한 점을 보이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 체험적 느낌의 부족을 풍부한 시적 이미지로 보완하 는 독자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다.
70년대생 작가들은 60년대생 작가들을 주축으로 한 신세대 문학의 연장선상에 있으면서 훨씬 다양하고 미세한 세계를 탐색하고 있다고 볼수 있다.
南再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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