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진상 밝히되 분열과 대립 안되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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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친일반민족행위에 대한 규명 작업이 본격화하게 됐다. 반세기가 넘도록 친일 청산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는 현실이 자괴스럽지만 역사의 정리라는 측면에서 거쳐야 할 작업이다. 말끔한 규명이 이뤄져 역사적 찌꺼기를 씻어내는 계기가 돼야 할 것이다.

1949년 반민특위가 무산된 이래 우리 사회는 이 문제로 너무나 오랫동안 소모적 논쟁을 되풀이해 왔다. 역사단죄로 국가정기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주장과 실효성.공정성에 문제가 많다는 반론이 팽팽하게 맞서며 첨예한 갈등까지 빚어왔다. 그런 점 때문에 이번 작업이 오랜 논란의 종지부를 찍고 갈등을 봉합하는 방향으로 진행돼야 한다. 옛일을 들춰 헐뜯기 하는 과거사 발목잡기가 돼선 결코 안 되며, 미래지향적 대통합을 원칙으로 삼아야 한다.

상황은 낙관적이지 않다. 진상규명법을 놓고 알맹이가 빠져 친일인사 면죄부를 위한 법이 됐다는 비판과,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반대론이 충돌하고 있다.과거를 정리한다며 갈등만 증폭시켜 또 다른 분열의 씨앗이 돼서는 안 된다. 무슨 명분이라도 미래를 향한 우리의 발걸음은 늦출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선 심사기준의 합리성과 역사해석의 유연성이 요구된다. 어떤 의미에서 해외 독립운동가를 제외하고 국내에 남아 있던 사람들은 직.간접 친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일제의 폭압통치라는 시대적 상황을 무시한 채 한두가지의 친일 언행만을 문제삼는다면 이는 제대로 된 평가라 할 수 없다. 불가피하게 행한 소극적 가담자와 입신양명을 위한 적극 가담자는 가려져야 한다. 세월이 흘러 대상자들이 거의 사망한 상태라 일부 자료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한계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작업이 조용한 가운데 진행되기를 바란다. 앞으로 임명될 9명의 위원은 열린 마음에서 지혜를 짜내야 한다. 아울러 친일 시비가 걸린 당사자들은 진상규명을 무조건 비판하기보다 과거의 잘못을 스스로 인정하고 사죄함으로써 갈등을 치유하는 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